지난해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살수에 맞아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농민 백남씨가 사고 317만에 사망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장실에서 장례식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농민 백남기(70) 씨는 우리밀 살리기에 앞장서던 일꾼이었다.
전남 보성군에서 우리밀 밭을 일구던 그는 농민들이 쌀값 폭락으로 생계가 힘들어지자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했다.
집회에서 백 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쌀 수매가 현실화 공약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백 씨를 기다리는 것은 청와대의 대답이 아닌 물대포였다.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이 백 씨를 폭력시위자로 간주해 쏜 물대포를 맞고 백 씨는 그 자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집회 참가자의 도움으로 구급차로 후송돼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이후 백 씨는 눈을 뜨지 못햇다. 병상에서 상태는 더욱 악화돼 25일 오후 1시 58분 결국 백 씨는 숨을 거뒀다. 쓰러진지 317일 만이다.
백 씨가 사망하면서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과 책임 공방도 더 가열될 전망이다.
백 씨가 중태에 빠진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은 백남기대책위를 꾸리고, 백씨의 부상 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서울대병원에서 장기농성을 이어왔다.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씨에게 경찰이 멈추지 않고 물대포를 쏘고 있는 모습. (사진=자료사진)
대책위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물대포 살수를 강행한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라며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7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국가와 강 전 청장을 상대로 2억4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은 그러나 물대포 살수와 백씨의 부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며 과잉진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시 현장을 총지휘한 경찰총수는 백 씨 병문안은 커녕 공개 사과도 거부했다.
지난 1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가 개최한 '백남기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공개 사과를 거부했다.
강 전 청장은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히 한 후에 할 수 있다.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선 경찰이 사건 초기 작성한 청문감사보고서를 확인해야 한다며 보고서 제출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사항이어서 제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새롭게 바뀐 경찰 지도부가 이번 사건 관련 책임자 처벌이나 공식 사과를 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이철성 신임 경찰청장은 백 씨 청문회 이후 가진 간담회에서 "청문회 결과에 따라 경찰의 법집행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지금까지는 법원 판결에 의하면 그날(지난해 11월14일) 공무집행은 적법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해 공식적인 사과를 피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