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최근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 타이탄'을 통해 테슬라처럼 직접 전기차를 생산하려던 계획을 바꿔 아이폰과 같은 위탁생산(OEM)을 모색하고 있어 어떤 회사들과 손을 잡을지 주목되고 있다.
자동차는 휴대폰이나 컴퓨터보다 더 복잡해 3만개의 부품이 투입되고 정교한 설계 및 품질관리 시스템이 필요해 현대 기술산업의 총아라고도 불린다. 이때문에 뒤늦게 전기차 개발에 뛰어든 애플이 고전하면서 일부 개발 일력을 방출시키고 직접 생산 방식을 사실상 포기하는 대신 명품 자동차 업체들과 접촉점을 넓히고 있어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위탁생산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애플은 자동차 생산을 포기하는 대신 테슬라의 '오토파일럿(Auto Pilot)'과 같은 자동주행 시스템만 개발해 위탁생산한 전기차에 탑재해 출시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iOS 운영체제 처럼 자동주행 시스템과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인 '카플레이'를 통합해 미래 스마트 커넥티드카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실제 애플은 아이폰과 맥 등 주요제품을 폭스콘과 페가트론을 통해 위탁생산하고 있다. 폭스콘이 애플 수익의 60%를 차지하는 아이폰 생산기지를 갖고 있는 핵심 파트너지만 그렇다고 애플이 폭스콘을 인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애플이 영국의 명품 스포츠카 브랜드 '맥라렌(McLaren)'을 인수하거나 전략적 투자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직 애플 엔지니어 출신 관계자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은 많은 공정과 손품이 많이 드는 자동차 생산 과정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맥라렌은 일일이 사람이 자동차를 직접 제작하고 조립하는 수제 스포츠카 회사다.
보쉬 다음으로 자동차 핵심 부품을 전 세계 메이커에 공급하고 있는 세계 2위 브랜드 오스트리아의 마그나와도 여러차례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처럼 애플이 핵심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자동차 부품 및 전장 업체들과 꾸준히 접촉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나면서 애플의 전기차 기반 자동주행차 생산 행보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 관련 전문가들은 애플이 당장 자동차를 제조할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계획대로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현재 애플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삼성이나 조립시설을 갖춘 폭스콘처럼 전기모터나 전자부품 생산과 자동차 조립시설을 가진 자동차 제조 파트너 확보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또, 애플이 2천억 달러(약 221조 원) 규모의 막대한 현금을 확보하고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전기차 생산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이폰 생산시설에도 아낌없는 투자를 해왔다는 점도 자동차 회사들이 애플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어떤 차를 어떤 방식으로 생산할 것인지만이 애플의 고려 대상이라는 것이다.
미국 투자금융회사 모건스탠리는 최근 미래 자율주행 전기차 산업과 연관된 주요 30개 기업 리스트를 공개했다. 이 중 애플의 전기차 생산 파트너로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을 추스려봤다.
▲마그나(Magna)마그나는 애플의 전기차 프로젝트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업체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본사를 둔 마그나는 보쉬에 이은 세계 2위 자동차 부품 업체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위치한 마그나 슈타이어(Magna Steyr) 공장에서는 BMW 5시리즈와 미니, 다임러의 벤츠 브랜드와 같은 고급 브랜드 자동차를 위탁생산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미 마그나의 엔지니어 10여명이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 위치한 애플의 비밀 자동차 시설에 투입돼 애플 엔지니어들과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건 스탠리는 보고서에서 "마그나 슈타이어는 스마트폰 업계의 폭스콘과 마찬가지로 애플카 생산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고, 애플의 신규 시장진입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다"고 분석했다. 쉽게말해 애플의 '1등급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모빌아이(Mobileye)이스라엘의 자율주행차량 부품업체인 모빌아이는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지능형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반도체와 알고리즘을 이용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제작해 판매하는 독점적 지위의 회사로 전 세계 80%에 달하는 자동차가 모빌아이 기술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주행 모드로 주행중이던 테슬라의 '모델 S' 차량이 트레일러 옆면을 들이받아 운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자동주행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모빌아이에게 책임소재를 떠넘기는 듯한 발언으로 테슬라와 모빌아이 간에 반목이 발생했다.
모빌아이는 자사 기술이 운전자 보조시스템일뿐 자율주행시스템이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해왔지만 테슬라는 모빌아이의 기술을 탑재하면서도 테슬라의 자율주행시스템은 완벽하다고 광고해왔다.
모빌아이는 지난 16일(현지시간) 테슬라에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혀 테슬라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결별을 선언한 셈이다.
자율주행차를 위한 핵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력으로는 모빌아이를 따라올 기업이 현재로서는 없다. 테슬라는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플랫폼으로 새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매달리고 있지만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모건 스탠리는 "모빌아이는 핵심 부품 즉시 탑재가 가능한 '2등급' OEM 공급업체"라면서 "애플이 직접 컴퓨터 비전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도 있지만 모빌아이의 상용 제품을 공급받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델파이(Delphi Automotive)델파이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영국 회사로 16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이다.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소프트웨어 및 디자인 회사들이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 경우 델파이와 같은 자동차 부품 OEM 생산 기업은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가장 큰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모건 스탠리는 "델파이는 자동차 산업에 있어 현재의 기술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몇 안되는 대규모 글로벌 공급 업체"라면서 "누군가 애플카에 브레이크와 서스펜션을 공급한다면 델파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델파이는 자율주행차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기존 자동차를 자사 기술과 부품을 투입해 무인차로 개조해 택시로 활용할 계획이다. 지난 8월에는 미국 무인차 서비스 스타트업 뉴토노미(nuTonomy)와 함께 2017년 싱가포르 '원노스(one-north)' IT산업 지구에 무인 택시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NXP반도체와 엔비디아 (NXP Semiconductors and Nvidia)자율주행차는 카메라, 레이더, LIDAR와 같은 핵심 센서가 탑재돼 컴퓨터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술이 적용된다.
NXP반도체는 게이머를 위한 그래픽 카드를 만드는 회사로 엔비디아와 함께 이 분야에서 선두주자다. NXP반도체에 따르면,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 중 4곳이 NPX반도체의 칩을 사용하고 있다.
NPX반도체는 최근 국토부가 추진하는 국내 첫 '차세대지능형교통시스템(C-ITS)' 시범 사업에도 공동 참여해 국내 자동차 전장 시스템 전문 기업인 이씨스의 웨이브 통신 솔루션에 차량간/차량대인프라 통신(V2X) 솔루션인 '로드링크(RoadLink)' 칩셋을 탑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엔비디아는 자율주행차의 오토크루즈(Autocruise) 기능을 위한 새로운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드라이브 PX2(Drive PX2)'를 4분기부터 자동차 생산 파트너 업체 중심으로 판매를 시작한다고 지난 20일 공식 밝혔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드라이브 PX2'는 GPU와 모바일 프로세서를 하나의 SoC(시스템 온 칩)으로 구성해 10 와트의 전력 소비만으로 차량에 탑재된 카메라, 라이더(lidar), 레이더 및 초음파 센서로부터 전송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고속주행시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HD지도에서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안전한 경로 계획을 수립한다. 지원하는 차량용 네트워킹 인프라는 이더넷과 CAN(Controller Area Network), 플렉스레이(Flexray) 등이다.
아울러 여러 대의 제품을 하나의 차량에 통합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드라이브 PX2' 를 활용하는 자동차 제조사 및 공급업체는 출발부터 도착까지 모든 과정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점대점(P2P) 방식의 주행 등 광범위한 자율주행 솔루션을 자유롭게 개발·생산할 수 있다.
모건 스탠리는 "애플이 애플카의 핵심이 될 컴퓨터를 직접 설계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애플카를 원활하게 생산하기 위해 NPX나 엔비디아 같은 핵심 칩 개발업체를 인수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분석했다.
▲ 테슬라(Tesla Motors)테슬라는 애플이 모티브로 하고 있는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다. 애플은 애플 스타일의 전기차를 만들고 싶어하고 2천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는 애플이 테슬라에 투자하지는 않겠지만 테슬라의 생산 공장을 인수할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테슬라는 애플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의 프레몬트에 대규모 테슬라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보쉬(Bosch)애플이 특허를 보유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전기 모터'다. 애플은 전기 모터와 관련된 핵심 인력을 확보하거나 전기 모터 사이클을 개발하는 스타트업과 긴밀한 협력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보쉬는 세계 1위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로 전기자동차의 핵심인 전기 모터를 만들고 있다. 현재 차세대 전기 모터와 전력 전자(파워 일렉트로닉스)를 개발하고 있으며 전기 엑슬(electric axle)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보쉬는 자율주행차 분야에 2500여 명의 엔지니어를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쉬는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기반 센서 시장의 강자로 애플도 핵심 고객이지만 보쉬와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적도 있다. 운전자보조시스템 개발 엔지니어인 스테판 베버를 애플이 영입한 것이다.
애플은 독일에 비밀연구소를 두고 애플카 개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규모 연구팀은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영업 분야 등에서 다양한 경력을 가진 젊은 전문가들로 주요 자동차 회사 출신 인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이미 BMW나 다임러와 애플카 개발을 위한 접촉을 벌였던 정황도 있어 애플이 독일에 기반을 둔 세계 1위 자동차 부품 업체 보쉬나 세계 최고 수준의 변속기를 생산하는 ZF와 협업할 가능성이 있다고 모건 스탠리는 밝혔다.
▲삼성(SAMSUNG)
삼성은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핵심부품 공급업체 중 하나로 애플 칩과 디스플레이를 공급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는 삼성이 밝히지는 않지만 전기자동차의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가 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삼성이 이탈리아 FCA(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티브) 계열의 자동차 부품을 생산업체 '마그네티 마렐리(Magneti Marelli)'를 인수하기 위해 협상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마그네티 마렐리는 차량용 조명, 엔터테인먼트, 텔레매틱스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인수 규모는 30억유로로 알려졌다.
삼성은 지난해 12월 자동주행차와 관련된 '자동차팀'을 발족시킨데 이어 중국 전기차 브랜드 비야디(BYD)와 전략적 제휴를 맺기도 했다. 삼성은 비야디 지분 1.92%(5천억 규모)를 보유해 9대 주주가 됐다.
모건 스탠리는 애플 자동차는 어떻게든 삼성과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