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및 원전당국이 지난해 여름, 최대전력 수요를 예상하고도 조율 가능한 원전 2기의 정비일정을 바꾸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해 여름 전력 부족이 예상된다며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는데 전력이 모자라 신고리 5·6호기 등 신규 발전설비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 전력피크 때 원전을 고의로 멈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재호(부산 남구을)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거래소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계획예방정비로 인한 원전 가동중지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수원은 지난 여름철 전력피크 기간이었던 7월 29일과 8월 3일 계획예방정비를 이유로 각각 신고리 2호기와 고리 2호기의 가동을 중지시켰다.
가동원전 계획예방정비 일정 조정 시, 올해 8월 전력예비율 변동 현황 (사진=더민주 박재호 의원실 제공)
이후 8월 8·11·12·16·17·18·22·23일 등 모두 8일 동안 전력예비율은 한자리 수(7.1%~9.6%)로 떨어졌다.
이들 원전의 계획예방정비 시점을 전력피크 기간 이후로 늦췄다면, 전체 전력예비율은 약 2%씩 늘어나, 지난 8월 한 달 한자리 수 전력예비율을 기록한 날 수는 8일에서 2일로 대폭 줄었을 것이라는 게 박 의원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계획예방정비는 18개월마다 계획된 연료교체 및 법정 정기검사를 위해 주요설비에 대한 점검 및 정비 등을 수행하는 것"이라며 전력피크 기간이라도 계획된 원전중지 일정을 조율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최근 5년간 계획예방정비로 가동 정지된 원전의 실시 주기 현황 (사진=더민주 박재호 의원실 제공)
그러나 박 의원이 최근 5년 동안 계획예방정비로 가동이 중단됐던 한울 3호기와 한빛 4호기의 계획예방정비 실시주기를 분석한 결과 이들 원전에 대한 정비기간은 짧게는 약 14.3개월(429일)에서 길게는 약 17.3개월(518일) 주기로 이뤄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원전에 대한 정비를 18개월 주기로 해야 하기 때문에 전력피크 기간을 피할 수 없었다는 한수원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현행 '원자력 안전법'에도 "정기검사는 발전용원자로의 경우 최초로 상업운전을 개시한 후 또는 검사를 받은 후 20개월 이내에 실시토록" 정하고 있을 뿐 '18개월 주기로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박재호 의원은 "관련법 따라 계획예방정비는 원전을 정비한 날로부터 20개월 이내에 실시하면 되는 것으로 사전에 전력피크기간을 피해 얼마든지 일정을 조율할 수 있었다"며 "전력이 모자라 신고리 5,6호기 등 신규발전 설비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가동 원전 2기를 고의로 중지시킨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7월 29일과 30일에 원전 6기의 가동이 중단됐지만, 전력예비율은 각각 13.5%와 16.5%로 안정적이었다"며 "이는 현재의 원전만으로도 전력수급이 충분하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또 "지난 여름철 정부는 예비력 급락에 따른 전력수급 차질에 대비해야 한다며 '에너지사용제한 조치'를 내리는 등 마치 국민이 에너지를 낭비해서 예비력이 부족한 것처럼 사실을 호도했다"며 "전력 및 원전 당국은 지금이라도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기 위한 꼼수를 즉각 중단하고, 가동원전의 계획예방정비 일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