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최호영 기자)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30분 지연 인출제도'로 현금 인출이 어려워지자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 돈을 빼내는 수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7일 창원에 사는 A(65) 씨는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의 인적사항과 신용정보가 유출돼 보이스피싱 범죄단에서 이용하고 있는데 그냥 두면 금융계좌의 돈을 모두 인출해 가니 돈을 찾아 집 안 옷장에 보관하면 수사관들이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근 주민센터로 가서 수사관을 만나십시오."A 씨는 의심스럽긴 했지만 돈이 인출된다는 생각에 은행에서 2400만 원을 찾아 집 안에 보관했고, 전화 안내에 따라 현관문 열쇠가 있는 곳까지 상세히 알려줬다.
잠시 뒤 집 주변에서 대기중인 남성 2명은 집 안으로 들어가 현금을 가방에 담은 뒤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지난 21일 양산에 사는 B(74·여) 씨도 "국제전화 요금 48만 원이 체납되어 있다. 통장에 돈이 있으면 결제되니까 모두 현금으로 인출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B 씨는 현금 900만 원을 인출하자 "현금이 불법자금이고 인출해준 은행원도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니, 인근 학교 앞으로 가 경찰관을 만나 정상적인 돈으로 바꿔라"는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B 씨는 이를 철석같이 믿고 900만 원을 경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 건넸다.
이런 모든 전화는 수사기관을 사칭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 콜센터에서 걸려왔고, 박모(18) 군 등 중국동포 10대 3명은 인출책이다.
박 군 등은 지난달 말부터 한 달가량 서울과 울산, 창원, 진주 등을 돌며 이런 수법으로 8차례 걸쳐 모두 1억 1300만 원을 가로챘다.
이들은 은행이 문을 닫는 주말에는 서울에서 쉬다가 평일에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노인 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가로챈 돈은 10%의 수수료를 떼고 불법 환전상을 만나 중국 조직에 송금했다.
범행 때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모자와 장갑을 착용하고, 빈 집에서 현금을 빨리 담아 가기 위해 보스턴백을 항상 앞 쪽에 메고 다녔다.
중국 콜 센터에서는 한꺼번에 많은 돈을 인출하면 은행 직원들의 의심을 살까봐 "사용처를 물어보면 미리 적당한 답변을 생각해 둬라"고 피해자들에게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실제 B 씨는 "임플란트를 하기 위해서"라고 은행 직원에게 말했다.
경찰은 100만 원 이상 현금을 이체할 경우 30분이 지나야 인출이 되도록 한 '지연인출제도'로 범행이 어려워지자, 직접 피해자를 대면하거나 집 밖으로 유인한 뒤 돈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보이스피싱이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등을 사칭하면서 노인들을 상대로 은행 예금을 찾아 냉장고나 세탁기, 옷장 등에 보관하도록 한 뒤 빈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쳤다.
경남 창원중부경찰서는 박 군 등 3명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중국 총책에게 불법으로 송금한 중국동포 C(36·여) 씨 등 2명을 외국환거래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은 확인되지 않은 공범과 여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김대규 수사과장은 "'예금을 보호해주겠다. 예금을 모두 인출하라'와 같은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수상한 전화를 받았을 경우 경찰에 신고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