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첫날 은행 홍보실은 분주했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은행권 혼란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현업 부서 여기저기로 전화를 돌리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이날 일각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은행 직원 중 일부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유는 이랬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은행원도 김영란법 적용받을 수 있다"현재 은행에서는 관련법에 따라 정부의 일부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는데, 김영란법 적용을 받게 되면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외국환거래법 등에 근거해 환전, 국고 수납 등 정부 업무를 대신해 수행하고 있고, 내 집 마련 디딤돌 대출 등 정책 금융 접수도 대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은행에서 관련 업무를 하는 일부 직원들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전국은행연합회는 보름 전쯤 권익위에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정부 위임·위탁 업무 수행 대상자의 범위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게 은행연합회 측의 설명이다.
솔직히 의아했다. 도대체 무슨 애로사항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다. 김영란법은 접대받지 말고 떳떳하게 업무를 보라는 취지의 법이다. '은행원들이 정부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데 접대받을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물음이 들었다.
전화를 돌렸다. 대부분이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굳이 사례를 들자면'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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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점 주요 고객과의 스킨십 애로은행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 고액 자산가 관리를 하는 직원이 있다. 이들을 가리켜 PB(프라이빗뱅커)라고 부른다.
보통 PB는 지점의 주요 고객인 고액 자산가의 자산을 관리해 준다. 펀드 등에 대한 전략적 투자 안내를 해주며 자산가와 스킨십을 강화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다른 은행으로 가면 지점 내 보유 자산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본사의 영업점 평가 방침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PB의 역량으로 자산가가 수익을 얻게 되면, 감사의 표시로 식사 대접을 하기도 한다. 물론 고액 자산가의 경우엔 지점에서 접대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자산가가 얼마 뒤에 미국 부동산 투자를 하겠다고 찾아왔다고 하면, 이때부터는 PB와 은행, 자산가는 모두 위태로워진다.
외국환거래법상 신고수리 등 업무는 한국은행의 업무다.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돈을 송금해야 하는데, 해외로 돈을 보내려면 해당 자금의 성격을 규명해야 한다. 이 경우를 '해외부동산 취득신고'라고 한다.
해외부동산 취득신고를 하는 순간 PB와 고액 자산과의 관계는 업무 관련성으로 묶인다. PB는 정부 업무를 대행했기에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된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자산가로부터 3만 원 이상 접대를 받거나, 5만 원 이상의 선물을 받았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런 관계가 적발되면 해당 은행과 PB, 지점 내 결제 라인 담당자, 심지어 자산가까지 모두 함께 처벌 대상이 된다. 지점장 까지도 말이다.
◇ 지점장의 인력 운영 고민은행 지점에서는 기업 예금과 대출도 큰 몫을 차지한다. 지점 주변 우량 기업을 접대하기도 하고, 기업으로부터 접대를 받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지점 특성상 이런저런 이유로 정부의 업무를 대신 보는 직원이 있을 수 있다. 지점장은 고민해야 한다. 이 직원을 기업 예금 및 대출 업무에 동원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말이다.
그나마 이야기가 되는 것들을 좀 골라서 사례로 나열했는데, 이외에도 은행 직원들의 경조사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친한 경우 축의금이나 부의금으로 20만 원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을 신경써야 하는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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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는 "문제될 것 없어"현장에서는 반응도 단순했다. 김영란법에 따른 업무 차질은 없고 오히려 그동안 고객과의 관계에서 애매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훨씬 분명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PB의 투자 설계로 고수익을 얻은 고객의 경우에도 감사 표시를 해야하는 금액이 명확해진다. 식사 대접을 얼마를 해야할 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선물을 해야하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점에 수천억 원대의 큰 돈을 맡긴 기업 재무담당자도 은행에 과도한 대접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은행에서도 은행에 돈을 맡긴 고객에게 과잉 대접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명분이 생기게 된다. 선순환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지점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은행에 적용된다고 해서 영업 현장에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며 "오히려 고객 입장에서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