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한국 사회가 바뀌고 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부패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가면서 곳곳에서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법이 어떻게 적용될 지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나 기준이 정해지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사례별로 발표한 메뉴얼조차 내용이 바뀌는 등 논란은 계속되는데다가 이마저 유권해석일 뿐이어서 최종적으로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한 어린이집에서 학부모들에게 보낸 안내문
우리 사회 여러 현장 가운데 국민들이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곳은 바로 '학교'.
서울 서초구에 사는 학부모 A(40)씨는 최근 학교에서 가정통지문을 받았다.
학교를 방문할 때 커피 한 잔도 절대 사오면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통지문을 보고 김영란법 관련 내용을 읽어 봤지만 봐도 어디까지 되고 안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학부모 김모(39)씨는 "아예 아무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하니 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고민하는 것은 다른 데 있었다.
교사에 대한 접대가 더욱 음성화되어 나만 하지 않는게 아니냐는 불안감도 크기 때문이다.
A씨는 "이제 저 말고 다른 분들은 오히려 다른 방법으로 더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함 마음도 생긴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학부모 김모(40)씨는 "결국 학부모와 교사와의 '신뢰' 문제인 거 같다"고 "액수의 문제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 오랜 관혼상제 문화도 변화 '불가피'사회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경조사비를 제한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친소 관계에 따라 경조사비를 내던 관혼상제 문화에도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직장인 김모(44)는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가전 제품을 선물해왔는데 공직자 친구들에게는 이제 해줄 수가 없게 됐다" 며 "너무 과도하게 제한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기업 간부 장모(45)씨도 "부정청탁은 근절되어야 하지만 친한 개인 사이의 사적인 영역까지도 법으로 재단해서 통제하는 거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40)씨는 "공무원인 친한 친구에게 경조사비 10만원 이상도 할 수 있는데 법으로 막아놓으니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조화나 화환까지 해서 10만원으로 제한하니 가서 식사하고 오기도 그렇고 참 곤란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46)씨도 "사회규범을 이렇게 법으로 규정하니 이렇게 혼란이 생기는 게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부패 방지'라는 대의가 현실 적용 과정의 혼선으로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고학수 교수는 "김영란법의 취지는 아주 좋지만 입법 과정에서 적용 대상의 직업군이 공무원에서 다른 직업군으로 폭넖게 포함되면서 각기 다른 직업별 특수성 등이 반영되지 못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부작용이 노출되고 있다"며 "이런 부작용들이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되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성영훈 권익위원장 (사진=황진환 기자)
이에 대해 성영훈 권익위원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윤리를 규범화했다는 것에 대해 말이 많다"면서도 "하지만 오죽하면 이런 법률까지 만들어 처벌을 하겠는가"라며 "'청렴'이란 가치를 현실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가치에 맞게 바꿔가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