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이 지시해 미르재단에 돈 냈다" 자료사진
청와대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모금 의혹을 시민단체 고발로 넘겨받은 검찰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당장은 정치권과 언론의 미르·K스포츠재단 논란을 관조하는 분위기지만, 검찰도 조만간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번 정권에서 신속하게 수사할 지, 다음 정권으로 넘길 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2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이르면 4일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의 미르·K스포츠재단 고발건에 대한 배당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센터는 지난달 29일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최서원 개명)씨,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 K스포츠재단 대표와 이사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고발했다.
800억원대 자금을 모아 재단에 출연한 전국경제인연합회 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상근부회장, 62개 출연 기업 대표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센터는 언론보도 등을 근거로 "안종범 수석이 전경련에 요구해 모금하고 미르 인사에 관여했고, 최순실은 K스포츠 인사에 관여한 사실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 배당이 되더라도 검찰 수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벌써부터 점쳐지고 있다.
검찰은 일단 센터 측이 피고발인들에 대해 의율한 범죄 혐의가 적절한지부터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안만 봐서는 무슨 죄를 적용할 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며 "기부금품 모집관련에 관한 법률 위반, 직권남용 혐의 정도가 가능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수사팀이 고민할 게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미르재단에 기부금을 출연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공개했다. 안 수석이 전경련에 모금을 종용했고 전경련이 대기업에 출연금을 할당해 미르재단에 돈을 몰아줬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토대로 대기업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 협조를 받으면 나머지 수사도 간단할 것으로 보이지만, 소위 '특수통'들은 "아직 확실하게 드러난 게 없다"고 강조한다.
한 특수통 검사 출신 변호사는 "미르재단에 대해서 나온 얘기는 많은데 실체가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며 "(노 의원의 녹취록에서 등장하는) 대기업 관계자가 믿을 만한 인물인지 신뢰성을 아직 담보할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결국 현 정권 임기가 1년여 남은 여소야대 정국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터진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에 몸을 사리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정치권 동향을 살펴보면서 신중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고발이 들어왔으니 수사를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1년 넘게 갖고 있지는 못하겠지만 수사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은 있다. 정치권에서 어떤 내용이 추가로 나오고, 정부여당의 행보가 어떤지도 지켜보면서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제일 높을 것 같다"고 관측했다.
수사 속도를 늦춰 아예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게 실체를 밝히는 데 더 적합하다는 말도 나온다.
검사 출신 한 중견 법조인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의 경우, 노태우 정부를 지나 김영삼 정부에서야 실체가 드러났다"며 "기업들이 돈을 낼 수밖에 없던 이유를 말하려면 정권 말이나 다음 정권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수사로 진실규명을 할 수 있는 '단서'들은 하나 둘 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일 10월 중 미르·K스포츠재단을 해산하고, 새로운 통합재단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두 재단 사무실도 서울 강남 학동로와 언주로에서 전경련 사무실로 옮겨질 예정이다. 최순실씨 추천으로 K스포츠재단 이사장에 임명된 의혹이 제기된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 역시 29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재단 소속 컴퓨터나 각종 자료들이 폐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두 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한 재벌기업에서 지난 28일 하루 만에 관련 서류를 일제히 파기한 정황, 미르재단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정황도 <한겨레> 보도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한 특수부 검사는 "수사는 단서가 있어야 하는데 사무실이나 책임자가 없으면 그런 단서를 어떻게 확보하겠냐"며 "수사를 안하려면 모르겠지만, 기왕 하려면 빨리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