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상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사람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후 숨졌다면 우선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인 거 같습니다."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고 백남기 농민의 시신 부검을 위한 법원 영장을 기어코 받아낸 가운데 경찰 조직 내부에서도 이런 행태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은 뒤 317일 만에 사망한 백 씨 사건에 대해 법 집행과정에서의 우연한 사고일 뿐 경찰 잘못은 아니라고 버티는 전·현직 경찰 수뇌부에 대한 내부 자성론이다.
농민 고(故) 백남기(69)씨에 대한 부검영장이 결국 발부된 28일 저녁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유가족 및 투쟁본부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경찰 경비부서에서 근무해온 A 씨는 30일 CBS노컷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사람이 공권력에 의해 죽었다면 우선 사과부터 하는 것이 상식"이라면서 "그래야 최소한 유족들을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일갈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지난 1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주최로 열린 '백남기 청문회'에서 "사람이 다쳤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백남기 농민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를 거부했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같은 날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청문회 결과에 따라 경찰의 법집행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지금까지는 법원 판결에 의하면 그날(지난해 11월 14일) 공무집행은 적법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해 공식적인 사과를 유보했다.
백 씨 시신 부검을 위해 경찰이 영장을 재차 신청하며 발부받은 것도 내부에선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경찰대 황운하 교수부장은 "불법 폭력시위라고 하더라도 공권력이 사람을 사망하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면 과잉진압이라고 볼 여지가 있고 따라서 부검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민중총궐기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관 B 씨는 "사인이 명확한 것 같지만 영장이 발부된 걸 보면 부검을 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면서도 "영장이 한 번 기각됐다 재청구해 발부된 걸 보면 '또 뭔가가 있는 것 아닌가' 해서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농민 고(故) 백남기(69)씨에 대한 부검영장이 결국 발부된 28일 저녁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부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안치실 입구에서 경찰의 영장 집행에 대비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이어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간다"면서 "수사기관이 정치권에 휘둘리는 모습을 많이 보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소문도 있다"고 귀띔했다.
영장을 발부 받은 것 자체가 조직에 부담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일선 경찰서에 근무하는 C 씨는 "영장을 받아놓고 부검을 못하면 '무능한' 경찰이 되고, 부검을 하면 시신을 훼손한 '무자비한' 경찰이 될 수 밖에 없어서 진퇴양난"이라고 한숨을 내셨다.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부검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 29일 백남기투쟁본부 측에 등기우편으로 부검 관련 협의 공문을 발송했다. 협의 일시와 장소를 오는 4일까지 경찰에 통보해달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백 씨 장례식에 대규모 추모행렬이 이어져 정권에 부담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부검을 하는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일선 경찰서의 또 다른 경찰은 "부검을 하면 시신이 훼손되기 때문에 염을 하지 못해서 대부분 바로 화장을 하고 장례 절차도 간소화한다"면서 "유족들과 경찰이 부검을 놓고 갈등하는 것도 장례식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