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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결제원이 막고있는 '증권사 기업계좌' 자금이체, 왜?

경제정책

    금융결제원이 막고있는 '증권사 기업계좌' 자금이체, 왜?

    "시대변화에 맞게 고객 편의성 제고 차원에서 해법 모색해야"

     

    기업이 갖고 있는 증권회사 계좌에서 다른 금융기관으로 직접 자금이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9년 전 자금시장법 제정 때 허용됐지만 금융기관 공동전산망을 운영하고 있는 금융결제원이 막고 있다. 어찌된 영문일까.

    2007년에 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회사를 포함한 금융투자업자가 영위할 수 있는 금융업무로 투자자예탁금의 자금이체업무가 포함돼 있다.(제40조 제4호)

    법상 증권회사 계좌에서 직접 다른 금융기관으로 자금이체가 허용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금이체를 위한 금융기관간 공동 지급결제 전산망을 운영하고 있는 금융결제원은 규약을 통해서 개인계좌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법인은 계속 못하도록 묶어놨다.

    이는 당시 국회에서 법안을 만들면서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사이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당장 법인 계좌에 대해서까지 허용할 경우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우선 개인부터 허용하고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9년이 지났고 개인에 대한 허용 이후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법인 자금이체의 문은 꽁꽁 닫혀있는 실정이다.

    현 상황에서는 금융결제원이 스스로 규약을 개정해 문을 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금융결제원의 회원사인 은행업계가 극구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업계가 내세우고 있는 반대논거는 3가지다.

    지급결제가 은행의 고유업무이고 이를 증권회사에 허용할 경우 유동성, 결제리스크에 따른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고, 재벌의 사금고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박창옥 은행연합회 수신제도부장은 “지급결제업무는 은행의 고유업무로, 이를 증권사에도 허용하면 은행업과 증권업 사이의 벽이 무너지게 되면서 증권사가 사실상 은행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은행은 수신기능이 있고 중앙은행에서 필요할 경우 긴급자금공급이 이뤄지지만 증권회사는 그런 것이 없어서 자금이체시점과 금융기관간 결제시점의 차이에서 유동성, 결제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증권회사는 재벌그룹이 계열사로 거느리는 곳이 많은데, 재벌그룹이 사실상 은행을 소유하면서 사금고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기득권 보호차원에서 나온 논리라고 반박한다.

    오무영 금융투자협회 증권파생상품서비스본부장은 “지급결제업무는 은행만이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고유업무가 아니라 부수업무다. 다른 금융업권에서도 자신의 고유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은행이 계속 지급결제업무를 틀어쥐고 있을 수 있나. 고객의 편의를 위해서 증권사도 지급결제업무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결제시점의 차이에서 오는 유동성, 결제리스크는 증권금융에서 증권사 예탁금의 5~10% 인출해 주는 등의 보완장치가 충분히 마련됐고 재벌의 사금고화는 증권회사가 계열사 자금을 함부로 임의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규제가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지급결제업무가 은행의 고유업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지난 2007년 자본시장법 제정 때 증권사 자금이체가 허용됐고, 그에 따라 개인계좌의 자금이체가 시행되고 있는 마당에 지급결제업무가 은행의 고유업무라는 이유로 법인계좌에 대해서는 자금이체를 계속 못하도록 막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유동성 결제리스크나 재벌의 사금고화 우려와 관련해서는 실제 가능성 여부를 하나씩 면밀히 따져보고 대책을 강구할 일이다.

    하지만 실제에서는 그 가능성을 따져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있고 이런 저런 우려 때문에 안된다는 주장과 반대주장만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9년째 이 문제에 대한 진전상황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이다.

    이것은 논리나 명분보다 그 뒤에 밖으로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지만 엄청나게 큰 밥그릇이 달려있어 절대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기업들이 증권사계좌에서 바로 자금이체를 할 수 있게 되면 현재 은행에 머물러 있는 기업의 여유자금이 대거 증권사로 옮겨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은행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초저금리 아래서 은행에서는 이자가 거의 안 붙지만 증권사 투자상품으로 옮기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도 은행 연계계좌를 통해 자금이체를 할 수 있지만 이것도 일부 제한적으로만 가능하고 급여통장이나 전자상거래 결제 등으로 활용은 불가능해 큰 불편이 따르는 것이 현실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개인의 자금은 모르지만 기업의 자금이 다 빠져나가면 은행의 존립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은행업계가 증권사 법인 지급결제 허용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허용한다고 해서 기업의 자금이 다 빠져나간다고 하는 것은 기우로 보인다.

    오무영 본부장은 “은행과 증권사는 각각 고유기능이 있다. 은행은 예금하고 대출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찾고 증권사는 투자하려고 하는 사람이 찾는다. 이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을 것이다. 지급결제를 허용한다고 해서 증권사로 은행의 기업 고객이 다 넘어 올 리가 없다. 증권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것은 증권사에 투자한 돈을 기업이 쉽게 이체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으로 기업고객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득권 보호차원에서 은행이 지급결제권을 틀어잡고 있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세상이 바뀌고 있고, 각 금융업권간의 경계도 많이 허물어지면서 고객 편의성이 제1의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거기에 맞춰서 은행과 증권업계도 자신의 핵심 고유업무인 예적금과 투자 등을 토대로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을 확보하려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더 편하게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법인 지급결제문제에 대한 해법도 쉽게 찾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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