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더 낮춰야 할까 아니면 정부 재정을 더 풀어야 할까. 정부의 경제처방을 놓고 재정 정책의 수장과 통화 정책의 수장이 또다시 의견 충돌을 빚었다. 그것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현재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 차 워싱턴 DC를 방문 중이다.
이런 가운데 우선 유 부총리는 9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기준금리가 1.25% 수준인 상태라 아직 '룸(여력)'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단순 논리로 따지면 그렇고, 금리 결정은 내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원론적인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재정 정책과 함께 정부의 전체 경제정책을 끌어가는 수장의 발언인 만큼 파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오는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유 부총리가 금리인하 여력이 있다고 발언하면서, 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에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 부총리가 치고 나가자, 같이 출국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반격에 나섰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기자단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이다보니 환율변동성 등을 고려할 때 선진국처럼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기 조심스럽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완화정책 결과 자산시장, 부동산 시장에서 가계부채 문제로 금융안정 리스크가 너무 많이 커져 있다"며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도 최근 재정이 더 많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국가로 한국, 독일, 네덜란드 등을 꼽았다"고 말해, 우회적으로 재정 정책의 책임을 강조했다.
경기 부진의 책임을 둘러싸고 재정당국과 통화당국의 수장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양상이 전개되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나란히 보도자료를 내고 진화에 나서는 모습도 보였다.
기재부와 한은은 이날 서로 보도자료를 통해 “기재부와 한은은 경기상황 인식과 정책대응 방향에 대해 충분한 소통을 하고 있으며 이견이 없다”고 똑같은 내용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그만큼 이들 두 수장의 발언이 시장의 큰 주목을 끌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