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제공)
'이슈의 블랙홀'이라며 정치권의 개헌 논의를 철저히 차단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마침내 개헌 논의 개시를 24일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우리 대한민국은 반세기만에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하며 선진국의 문 앞에 서 있지만,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임기가 3년 8개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일부 정책의 변화 또는 몇 개의 개혁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정치는 대통령선거를 치른 다음 날부터 다시 차기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체제로 인해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구도가 일상이 돼버렸고, 민생보다는 정권창출을 목적으로 투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단임제로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국정과제의 추진과 결실이 어렵고, 대외적으로 일관된 외교정책을 펼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며 "북한은 '몇 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수십 년 동안 멈추지 않고 있고, 경제주체들은 5년 마다 바뀌는 정책들로 인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와 경영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현행 대통령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또 "이런 고민들은 비단 현 정부 뿐만 아니라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으로 선출된 역대 대통령 모두가 되풀이해 왔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저 역시 지난 3년 8개월여 동안 이러한 문제를 절감해 왔지만, 엄중한 안보·경제 상황과 시급한 민생현안 과제들에 집중하기 위해 헌법 개정 논의를 미뤄왔다. 또한, 국민들의 공감대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들이 더 혼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개헌 논의 자체를 자제해주실 것을 부탁드려 왔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고심 끝에, 이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가 처한 한계를 어떻게든 큰 틀에서 풀어야 하고 저의 공약사항이기도 한 개헌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운영의 큰 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당면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더욱 중요하고, 제 임기 동안에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바로 서게 할 틀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또한,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시기적으로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하게 됐다"고 입장 변화 이유를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그래서 그 뜻을 국민의 대표이자 그동안 지속적으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해 오셨고, 향후 개헌 추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실 국회의원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리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판단 하에 오늘 국회 연설을 계기로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인구변화와 사회다원화 등 현행 헌법이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은 1987년 때와 같이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다수 국회의원이 개헌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특정 정치 세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없는 20대 국회의 여야 구도도 개헌을 논의하기에 좋은 토양이 될 것"이라며 "대립과 분열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지금의 정치 체제로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킬 2017년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할 때"라며 "저는 오늘부터 개헌을 주장하는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국정 과제로 받아들이고, 개헌을 위한 실무적인 준비를 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임기 내에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서 국민의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면서 "국회도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개헌의 범위와 내용을 논의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정파적 이익이나 정략적 목적이 아닌, 대한민국의 50년, 100년 미래를 이끌어 나갈 미래지향적인 2017체제 헌법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