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에서 내 이름을 검색했더니 예전에 저지른 절도사건 신문기사가 나오네요. 철없던 시절의 일이고, 법에 따라 처벌받고, 이미 오래전에 사면과 복권까지 받고, 정부의 공식 기록에서도 지워진 일입니다. 나도 잊고 있던 오래전 기사가 포털에서 검색되다니 정말 당황스럽네요. 아이가 나중에 커서 내 이름을 검색해볼 것을 생각하니 걱정입니다. 처벌받고 다 끝난 일인데 제발 삭제 좀 해주세요.”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기자인 당신이 이런 요청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6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 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쉽게 말해, 아이디와 비밀번호 따위를 잊어버려 이전에 올린 글이나 이미지를 지울 수 없을 때 그것을 지울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잊혀질 권리’를 처음으로 제도화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가 하면,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잊혀질 권리가 정보화 시대의 핵심 문제로 떠올랐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런 때에 잊혀질 권리에 관한 국내 최초의 저작 '나에 관한 기억을 지우라'가 출간되었다. IT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현장 기반의 연구자인 구본권 기자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리라이팅해 펴냈다. 책에는 잊혀질 권리의 정의, 언론과 잊혀질 권리를 둘러싼 논점, 잊혀질 권리를 법제화할 필요성을 외국의 사례 연구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은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개인이 인터넷에 검색되는 자신의 정보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개인정보 삭제 청구권’의 개념으로 규정할 때 분명 잊혀질 권리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에는 빠진 게 있다. 바로 인터넷에 개인이 스스로 올린 글이 아니라, 타인이나 신문·방송 기사를 통해 드러난 나에 관한 정보에 대한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개인이나 타인이 올린 글을 삭제하는 것은 일정한 절차만 밟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신문·방송기사처럼 공공적 성격의 언론매체와 연관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바로 언론의 최우선 가치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대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특히 언론과 관련한 잊혀질 권리, 구체적으로는 '기사 삭제·수정 요청권'에 관해서다.
위의 절도사건 사례는 저자가 예전에 실제 겪은 일이다. 저자는 당시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는 “잘못된 내용이 없다면 보도된 지 오래됐다는 이유로, 또 관련자의 요청을 이유로 기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저희 신문사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지금의 보도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개인 신상 정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비슷한 여러 가지 상황을 한국의 현직 언론인들에게 제시했을 때 대답 또한 제각각이었다.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그럴 수 없다는 입장도 만만찮았다(5장 참고). 삭제할 수 없다는 언론인들은 언론 기사가 공적 성격을 지닌 역사적 기록물이며, 기사 삭제를 허용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고, 삭제하는 데 따르는 기술적인 비용 문제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떨까? 잊혀질 권리는 2011년 유럽연합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0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일반 데이터 보호 레귤레이션’을 공표하고, 2011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법무 담당 위원인 비비안 레딩이 잊혀질 권리를 개인의 프라이버시 권리의 핵심이자 데이터 보호 개혁의 필수 요소라고 한 것이 신호탄이다. 이후 유럽과 미국 대륙에서 잊혀질 권리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나, 의견을 일치시킬 수는 없었다. 유럽연합이 잊혀질 권리를 프라이버시 권리와 연관해 폭넓게 인정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적극 옹호한 수정헌법 제1조에 근거해 잊혀질 권리를 따로 법제화하지 않는다. 즉, 위의 사례의 경우 유럽연합에서 기사 삭제를 권고한다면 미국에서는 삭제 요청을 묵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유럽연합이 삭제 요청권을 발동하는 것은 언론사나 기자가 쓴 원래 기사에 대해서가 아니다. 포털을 통해 유통된 기사다. 그러니까 미국은 원래 기사와 유통되는 기사를 모두 잊혀질 권리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고, 유럽연합은 유통되는 기사에만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언론과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잊혀질 권리는 ‘묵은 기사의 삭제?수정권’에 대해서라고 볼 수 있다. 종이신문 시대에는 기사 유통의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또한 기사를 관련자 말고는 다른 사람들이 오래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묵은 기사들이 디지타이징화되어서 저장되고 국경을 넘어 유통되면서 기억이 재발견되었다. 또한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포털에 있는 묵은 기사를 개인들이 링크하고 복사해 저장하면서 기억이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앞으로 아무리 기사 삭제 권리를 폭넓게 보장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묵은 기사-나에 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은 이미 불가능할지 모른다. 정보화 시대가 낳은 명암이다. 이처럼 묵은 기사 삭제 요청권은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섣부른 대응보다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한 까닭이다.
한국에는 아직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명확한 법률이 없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잊혀질 권리가 보장되고도 있다. 정보통신망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언론중재법 등에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법률들이 존재하나 단일하게 묶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포털에서 개인이 정보 수정과 삭제를 요청할 경우 아주 특별한 경우(공인이나 사회적으로 특별한 사건의 경우)가 아니면 쉽게 삭제할 수 있다. 인터넷에 ‘맛있는 식당’에 대한 정보는 많아도 ‘맛없는 식당’에 대한 정보는 없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의 ‘임시조치’ 조항에 의거해 식당 주인이 맛없는 식당 후기를 삭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 기사도 마찬가지다. 언론사 데스크의 판단이나 윤리강령에 준해 기사 삭제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한국은 이미 잊혀질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이 모두 임의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데스크의 판단이나 윤리강령은 회사마다 다른 그야말로 자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들이 그렇지만 기준이 임의적이면 판단이 엄정할 수 없다. 그러면 분란이 생긴다. 인터넷에서 묵은 기사 삭제와 관련한 소송이 매해 늘어가는 속도를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법적 해결책이 없다. 피해 현상은 명확하지만 법적 근거와 구체적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잊혀질 권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언론계 안팎의 논의가 절실하다.
저자가 제안하는 공론화 방안은 이렇다.△기자협회나 편집인협회 등 언론계 차원에서의 과거 기사 삭제 요청과 잊혀질 권리에 관한 공개 논의△잊혀질 권리에 대한 저널리즘 윤리 차원에서의 접근△언론의 기록성, 보존성과 검색엔진의 인덱싱 결과 노출을 분리하는 방안△언론중재법에서 기사 삭제 청구권 또는 검색결과 링크 배제 청구권을 도입하는 법 개정을 통해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묵은 기사 삭제·수정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잊혀질 권리라는 낯설고 어색한 표현이 등장하게 된 현상을 살피면 디지털 기술과 그 사용자인 사람이 맺는 관계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잊혀질 권리는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의 속성상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기술을 개발하고 마케팅하는 기업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는 기계의 질서를 사람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기술절대주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맹목적 믿음일 따름이다. 기술도 결국 사람이 설계하고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든지 기술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간적 요구를 담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문제 제기와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
결국 잊혀질 권리는 기술에 사람을 맞출 것인가, 사람의 생각과 문화에 기술을 맞출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당장 이 문제의 정답이 없다고 해서 사람이 기계의 작동 방식과 구조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기술은 우리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만큼 더 인간화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디지털 세상의 권력 구조를 인간화하기 위한 실마리가 바로 잊혀질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