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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편의 아내 폭력은 사소한 일이 되는가?

책/학술

    왜 남편의 아내 폭력은 사소한 일이 되는가?

    신간 '아주 친밀한 폭력;여성주의와 가정폭력', 정희진 지음

     

    신간 '아주 친밀한 폭력'은 '아내 폭력'이라 불리는 아주 친밀하고도 낯선 폭력의 실상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우리 사회의 성 차별적 인식을 낱낱이 드러낸다. 이 책은 ' 아내 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사회 구조의 문제이며,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계급 관계보다 더 근본적인 권력의 문제임을 입증한 연구서이다.

    저자 정희진은 10여 년에 걸친 상담 경험과 사례 연구, 수백 편에 이르는 국내외 문헌 연구, 가해 남성과 피해 여성에 대한 심층 면접(전체 50가구)을 바탕으로 하여, 가족 집단에서부터 공권력에 이르기까지 '아내 폭력'을 공공연히 은폐하고 재생산하는 가부장제 사회의 멘탈리티를 속속들이 해부한다. 가해 남성들과 피해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운명 공동체이자 평화로운 안식처로서 가족의 허상은 산산이 부서지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성 차별 의식이 압축적으로 구현되는 공간으로서 가정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성주의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책에서 저자는 남성 중심 사회가 결혼 제도를 통해 어떻게 여성의 정체성을 시민·개인·인간이 아니라 아내·며느리·어머니라는 역할로 이전시키고 남성의 기득권을 유지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매 순간 인간으로서 ‘권리’와 아내·며느리·어머니로서 ‘도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들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페미니즘 입문서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아내 폭력’에 대한 정확한 실태 조사가 어려운 더 중요한 이유를 말한다. 여성에게 자신의 경험을 여성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표현할 언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아내 폭력’을 여성 개인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폭력으로 환원하는 가족주의적 접근 방식(“아내 폭력은 가정을 깨뜨리는 행위이므로 잘못”이라는 인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폭력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자’는 관점에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아내 폭력 문제가 제대로 인식되지도 해결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현행 가정폭력방지법도 최우선 목표는 가정의 ‘회복’이다.
    가정 폭력 범죄자의 구속률이 1퍼센트대에 불과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한국의 검찰과 사법부는 대부분의 가정 폭력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그러나 ‘상담’과 ‘치료’를 받는다는 조건 아래 가정으로 돌아간 남성들이 다시 폭력을 저지르는 재범률이 높아지고 있으며 피해 여성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가부장제 사회는 ‘전통’이나 ‘문화’라는 이름 아래 여성이 당하는 폭력을 폭력 그 자체로 인식하지 않게 하는 다양한 문화적 구조들을 만들어 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그동안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사회적 통념들, 아내 폭력의 심각성과 정치적 성격을 은폐하고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억압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를 파헤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이 입은 폭력 피해와 고통을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여성이 자신이 겪은 가정 폭력, 성폭력 사건을 용기를 내어 고발하는 순간, 주류 남성 사회는 끊임없이 증거를 요구하고 검증하려 든다. 저자가 만났던 아내 폭력 피해자들 역시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고통을 겪은 뒤였고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온전히 믿기 어려워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여성으로서, 여성주의자로서, 사회과학 연구자로서 피해 여성들을 만나면서 겪은 고민과 혼란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특유의 감수성과 솔직함을 통해 저자는 고통을 증언하는 것, 타인의 고통을 듣는 행위에 대한 고민에 동참하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저자에 따르면, 증언자로서 만난 피해 여성들은 ‘이런 이야기를 누가 믿겠느냐?’며 자신이 폭력당한 경험을 쉽게 털어놓지 못했다. 증언자들은 말하는 고통 못지않게 의심받는 고통을 호소했다. 저자 역시 이런 이야기를 썼을 때 사람들이 믿을지 걱정했다. 피해자는 자신이 분명히 맞았는데도 자신의 경험을 의심했고, 저자는 자신이 직접 들은 경험을 의심했다. 이 상황에 대해 결국 저자는 증언자와 연구자가 모두 “가부장적 시선을 강하게 의식”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책 속으로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는가?
    여성 폭력은 그 사회의 도덕관과 연결되어 있는데, 여성에 대한 폭력을 명예나 도덕에 대한 범죄로 인식하게 되면 여성은 피해 사실에 분노하기보다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피해 여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더럽힌’ 존재가 된다. 자신이 당한 폭력을 거론하는 여성은 내부의 치부를 폭로한 ‘배신자’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폭력당하는 아내에게 피해 사실은 나의 피해, 나의 고통 이전에 집안의 비밀이다. 가해 남편이 아내에게 비밀 유지를 강요하는 경우도 많지만 가족/남편의 명예가 자신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아내는 피해 사실을 숨긴다. ― 176쪽(5장)

    가족 중심 관점에서 여성 인권 관점으로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관념적으로는 긍정적, 진보적 가치로 간주되지만, 여성 인권처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한국 사회의 주류 가치인 가족주의와 경합할 때는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문화적 상황이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이유이다. 이처럼 성 차별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은 폭력당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여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진다’는 인권 개념이 모순적인 명제가 되어버린다. ― 249쪽(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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