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관광버스(대전=연합뉴스)
단풍 구경을 하려고 전북 대둔산으로 향하던 산악회 회원들이 참변을 당했다.
정원을 초과한 채 고속도로를 달리던 관광버스가 옆으로 넘어지면서 4명이 숨지고, 22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 수원서 대둔산 가다 전도…정원보다 3명 더 타
6일 오전 9시 32분께 대전시 대덕구 신대동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 회덕 분기점 인근(부산 기점 278㎞)에서 이모(55)씨가 몰던 관광버스가 도로 옆에 설치된 가로등 등 구조물을 들이받고 우측으로 넘어졌다.
이 사고로 이모(75)씨 등 승객 4명이 숨지고, 22명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다친 승객 가운데 8명은 중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탑승객들은 경기도 수원시 모 산악회 회원이다. 이날 오전 7시께 수원 화성행궁에서 출발해 대둔산으로 산행을 가던 중이었다.
기사 포함 46인승인 해당 관광버스에는 애초 운전자 이씨를 포함해 46명이 탑승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찰 추가 조사를 통해 49명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정원보다 3명이 더 버스에 몸을 실었다는 뜻이다.
경찰 관계자는 "산악회 관계자 진술 등을 토대로 처음에 전해진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타 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 '초과 탑승' 안전 불감증 가능성 커져
3명이 초과 탑승한 것으로 경찰이 확인하면서 이번 사고 역시 안전 불감증으로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난 버스에는 승객용 좌석이 모두 45개가 있다. 가운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1∼10열은 양쪽으로 2명씩, 맨 뒷 줄은 5명이 각각 앉을 수 있다. 기사를 포함해 46명이 정원이다.
기사 좌석 옆으로는 접이식 보조석도 있다.
경찰은 이 보조석과 출입문 계단 등에 초과 탑승한 승객이 걸터앉아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서 있던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이나, 좌석에 제대로 앉지 않은 사람이 일부 있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산악회 관계자를 대상으로 추가 진술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버스가 넘어진 원인과는 별개로 부주의에 따른 인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적어도 2명 이상은 좌석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인명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갑자기 끼어든 차량 피하다 사고 났다"
사고는 호남고속도로 지선 쪽으로 가던 한 승용차가 경부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바꿔 관광버스 앞으로 끼어든 게 발단이 됐다.
버스 운전자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고속도로 3차로를 달리던 중 승용차가 갑자기 앞으로 들어왔고, 이를 피하려다가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이씨가 지목한 승용차는 곧바로 현장을 벗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버스 운전자 이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는 한편 끼어들기 차량을 확인하기 위해 버스 블랙박스 녹화 영상과 고속도로 주변 폐쇄회로(CC)TV 화면을 입수해 분석하고 있다.
블랙박스 녹화 영상에는 버스 앞으로 끼어든 흰색 쏘나타 승용차가 발견돼 경찰이 차주를 파악하고 있다. 호남고속도로 지선에 넘어가 있던 해당 승용차는 중간 안전지대를 넘어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원인은 안전운전 불이행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주행하면서 주변 상황에 맞춰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버스 운전자는 갑자기 승용차가 끼어들어 피하려다가 사고가 났다고 진술하지만, 정확한 사고 원인은 좀 더 조사해야 알 수 있다"며 "음주나 과속은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 "살려달라·119 신고하라" 순식간에 '아수라장'
사고 당시 관광버스가 가로등 등 도로 옆 구조물을 들이받은 뒤 넘어지면서 일부 승객이 의자 등에 눌려 피해가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
버스 안은 '살려달라·119에 신고해달라'는 아우성으로 '아비규환'이었다.
승객 이모(70)씨는 "버스가 갑자기 갈지(之)자로 왔다 갔다 하더니 넘어졌다"며 "관광이 아닌 등산이 목적인 산악회이기 때문에 음주 가무는 없었고 제 속도로 대둔산으로 가는 중이었다"고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차가 넘어지면서 의자가 부서지고 회원들끼리 바닥에 깔리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며 "안전벨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구조됐다"고 전했다.
다른 승객은 "'살려달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며 "비명과 신음 속에 119에 신고하라는 외침으로 가득 찼다"고 떠올렸다.
그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일부 승객은 버스 통로 사이로 넘어지면서 엉키고, 부서진 좌석에 깔리기도 했다고 참혹함을 전했다.
또 다른 승객은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다시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버스가 휘청거렸다"며 "앞에서 누군가 차량 내부 마이크로 안전벨트를 매라는 안내를 하고 나서 불과 몇 분 후에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부상자들은 갓길 옆 잔디밭에 누워 119 구급대원의 응급 치료를 받았다. 일부 중상자는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 "잘 다녀오라 배웅했는데" 사고 산악회 '침통'
해당 산악회는 비전문 산악회로, 사고로 숨진 전 회장 이(75)씨가 5년 전 만들어 한 달에 2번씩 일요일마다 산행했다.
정회원은 20여 명 수준이지만,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실제로는 150여 명이 이 산악회를 통해 산행을 함께했다.
연령대는 50대 중반부터 60대 후반까지 다양하고, 70대도 4∼5명이 포함돼 있었다고 현 산악회 회장 A씨는 설명했다.
A씨는 "사망자 중에는 5년 전 산악회를 결성한 전 회장도 포함돼 있다"며 "그는 산악회 회원들을 잘 챙겨줬고, 회비가 남으면 지역 소외계층에 쌀을 사다가 전달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침통해 했다.
또 사고를 낸 모 관광회사 버스는 매번 이용하던 버스라고 A씨는 설명했다.
A씨는 "우리 산악회는 사고를 낸 버스(회사)를 매번 이용했으나 수년간 단 한 차례의 사고도 난 적이 없었다"며 "버스기사도 항상 같은 사람이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