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한 사진사가 불 붙인 '세종시 촛불'…"멈추지 않을 것"

사회 일반

    한 사진사가 불 붙인 '세종시 촛불'…"멈추지 않을 것"

    12일 세종시 호수공원 무대섬에서 2차 대규모 촛불집회 예고

    세종시 촛불집회를 기획한 사진작가 서영석 씨. 그는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제작한 '세월호 탁상 달력' 앞에서 포즈를 취한 서 씨. (사진=서영석 씨 제공)

     

    "행진을 할 때는 꼭 인도로만 행진해 주세요. 저는 세 아이의 아빠인데요. 여러분들이 인도를 벗어나면 저희 가족들의 생계가 힘들어집니다."

    지난 5일 세종시 호수공원 무대섬에서 열린 첫 박근혜 하야촉구 촛불집회. 2천여명의 참가자들을 이끌던 한 남자의 생계형(?)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세종시 촛불집회를 기획한 서영석 씨였다.

    서 씨는 그날 집회가 끝나고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긴장이 그때까지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풍등 300개를 준비했는데, 풍등이 날아가다 불이 붙으면 어떡하나, 사람들이 행진을 하다가 혹시 사고가 나지 않을까, 심지어 무대섬 나무데크에 촛농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시설 관리자가 신신당부도 하고… 온갖 것들이 걱정이 안 되는게 없더라구요."

    다행히 세종시에서 사상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는 평화롭게 아무 사고 없이 끝이 났다.

    서 씨는 지난해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사를 왔다. 세 자녀의 가장이며 아기 전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무단횡단을 하지 말자며 동네에 현수막을 만들어 손수 거리에 내걸기도 하고,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노란우산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등 사회 참여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는 개인일 뿐이다. 어떤 단체나 조직에 속해 있지 않다. 그저 주변에서 다른 지역에서 촛불집회를 하는데 세종시에서도 해야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말을 듣고, 카페 게시판에 촛불집회를 하자고 글을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전국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데, 주변에서 세종에는 촛불집회가 없냐는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뜻이 맞는 몇몇 분들과 논의해서 우리도 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겁니다.

    처음에는 100명 정도면 많이 모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세종맘카페, 세종시닷컴 등 지역 커뮤니티에 서 씨가 올린 글에 댓글이 수백개가 달렸다. “그날 촛불집회에 참석하겠다고 한 댓글이 350개 정도 됐어요. 그래서 250명 정도 모이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집회 장소를 좀 더 넓은 무대섬으로 바꿨어요. 사실 행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지난 5일 세종시에서 열린 촛불집회. 행진한 참가자들이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정리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장규석 기자)

     

    게시판에 올린 집회 개최 안내 글과 세종시에 내 건 현수막 2개가 홍보활동의 전부였다. 그러면서 서 씨는 통장에서 생활비를 빼고 남아있던 모든 돈을 털었다. 그렇게 마련한 150만원으로 현수막을 만들고 LED촛불, 풍등도 샀다.

    300명 정도가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했는데, 집회 당일 호수공원 무대섬에는 입소문을 타고 2천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집결했다. 자녀 셋을 둔 사진관 대표에 불과했던 그가 세종시 촛불집회를 이끄는 리더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주먹 구호를 외치는 것도 어설프고, 사람들이 구호를 제대로 잘 따라줄지도 의문스러웠어요. 무슨 정신으로 집회를 마쳤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촛불집회 사회를 보고 있는 서영석 씨 (사진=서영석 씨 제공)

     

    '공무원들의 도시' 세종시에서도 촛불집회는 열렸고, 예상 밖으로 호응은 컸다. 사실 세종시는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진보성향도 강하다. 지난 총선에서도 야당지역으로 분류됐다.

    그렇지만 공무원들, 그리고 그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행정수도 세종시에서 수천명이 모인 집회가 열렸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세종시 촛불집회는 오는 12일에도 계속된다. 서영석 씨는 "지난번에 참석한 사람들은 물론, 소식을 뒤늦게 확인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참석하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이번에는 집회인원 2천명을 신고했다"고 말했다.

    서울 집회로 사람들이 많이 빠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참가의사를 밝히면서 집회 장소도 당초 아름동 복합커뮤니티센터 앞에서 하기로 했던 것을 지난번처럼 호수공원 무대섬으로 바꿨다.

    서 씨는 지역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들과 연합해 촛불집회를 세종에서 매일 열거나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이어가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세종에서도 촛불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

    가장 큰 걱정은 생계다. 사진관의 특성상 토요일에 고객들이 몰리기 때문. 결국 그는 생계도 거의 포기하고 촛불집회에 매달린다.

    "제 딸이 그 유명한 '중2'인데요. 평소에 아빠한테 안기려고도 하지 않던 딸이 그날 촛불집회를 이끌던 저를 보고 '아빠 멋있다'고 칭찬을 해주더라구요. 세상에 그만한 보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죠.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무원의 도시' 세종시에서도 박근혜 하야 촛불은 당분간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