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RI 홈페이지 캡처)
정부가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에게 7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밀어줬다 문제가 되자 돌연 취소한 뒤 편법을 총 동원해 또다시 지원에 나서 특혜의혹이 제기됐다.
정부의 사업밀어주기로 인해 AIRI는 이른바 'IT계 미르'로 통하고 있다.
'한국형 알파고' 연구 개발을 위한 민간연구소인 AIRI는 올해 초부터 관제특혜연구소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범, 지금까지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는 올해부터 5년간 총 7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를 '정책 지정'을 통해 AIRI가 수행토록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래부가 '공모' 규정을 무시한 것을 비롯해 AIRI를 둘러싼 각종 특혜와 편법 논란이 일자 결국 정부는 잘못을 인정, '지정 공모'로 변경했다. 대학 등 관련 연구 기관들 모두 동등한 조건에서 공모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처럼 연구개발 과제 수행 기관을 공모하겠다고 해놓고선, 공고 과제명과 세부항목이 AIRI가 당초 하려던 연구 과제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하게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혜 논란에 무늬만 바꿨을 뿐, 정부는 또다시 'AIRI 밀어주기'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 미래부 과제 공고와 AIRI 추진 연구 과제와 동일…본색 드러낸 지원' 논란더불어민주당 방송통신 정책위원회에 따르면 미래부는 지난 2일 '2016년도 정보통신․방송 기술개발사업 7차 신규지원 대상과제 공고'를 발표, 과제 수행자 선정 절차를 공개했다.
미래부가 제시한 총괄과제는 '자율지능 디지털 동반자(Autonomous Digital Companion) 기술 연구'다.
이에 따른 세부과제로는 ▲ 자율지능 디지털 동반자 프레임워크 및 응용연구(50억 원) ▲ 자율지능 동반자를 위한 적응형 기계학습 기술 연구(40억 원) ▲ 사용자의 의도와 맥락을 이해하는 지능형 인터랙션 기술 R&D(30억 원) ▲ 대화 상대의 감성 추론 및 판단이 가능한 감성 지능 기술 R&D(30억 원) 등 총 4가지가 핵심 내용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두달여 남은 올해에만 예산 150억원이 투입된다.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면 계속 과제로 선정돼 매년 150억원씩 2020년까지 총 750억원이 지원될 정도로 상당한 규모의 사업이다.
문제는 이 총괄과제와 세부과제 모두 그동안 AIRI 김진형 원장이 지난 7월 29일 열렸던 AIRI 설립기념 기자간담회에서부터 지난달 11일 개원식 겸 인공지능 국제컨퍼런스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 강조해온 'AIRI 첫 번째 추진 과제'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실제 AIRI 홈페이지 내 'AIRI 소개' 자료 23쪽 '플래그십 관제 준비 현황'에는 '자율지능 디지털 동반자 기술 연구'이라 적시돼있다. 미래부가 '공모' 형태로 제시했는데, 김 원장이 내세운 과제명과 글자 한자 안틀리고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총괄과제에 따라 제시된 4가지 세부과제 또한 지능기술(기능구현), 요소기술(기반구축), 응용서비스의 내용이다. 이 역시 평소 김 원장이 수차례 언급해왔던 것이다. 현재 AIRI 홈페이지에는 AIRI 소개 항목이 사라져 찾아볼 수 없다.
미래부는 지정공모 신규과제 마련을 위해 ①기술로드맵 → ②기술수요조사 → ③기획대상 후보과제 도출→ ④기획대상 과제 확정 → ⑤과제제안요구서 통한 과제기획(인터넷 공시, 공청회) → ⑥후보과제 선정 → ⑦사업별 심의위원회 등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최종 신규과제(안)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미래부가 제시한 과제와 김 원장이 줄곧 주장해온 AIRI 첫 수행 과제명과 같은 건 '우연의 일치'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에서는 "이 지정공모절차는 4개의 세부과제에 대해 AIRI를 과제 수행 주관기관 또는 참여기관으로 선정한 뒤 최대한 AIRI에 지원금을 몰아주기 위한 매우 형식적인 절차 진행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미래부와 사전 합의돼 있는 과제제안요구서에 적합한 과제 수행자는 AIRI밖에 없어 당연히 AIRI가 핵심적 과제 수행자로 선정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통신 수석위원은 "결국 당초 정책지원을 통한 AIRI 지원 계획이 무산되자 미래부가 김 원장과 짜고 공고 전까지 AIRI와 합의된 과제를 제시하게된 것"이라면서 "공식 출범한 지 겨우 2개월된데다, 깜깜이 선발로 제대로 검증도 안된 10명의 연구원만 있는 AIRI에 정부가 편법을 쓰면서까지 특혜를 주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 정부, 올해 內 예산 지원하려 꼼수…미래부 "규정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평가" 미래부가 공모 절차 진행 기간을 단축한 것도 의구심을 사고 있다.
이번 미래부 공모는 이달 2일부터 내달 1일까지 의무 공고기간을 지나면, 사업계획서 접수 → 사전검토 → 평가위원회 평가 → 평가결과 통보 및 이의신청 → 신규사업자 확정 및 협약 체결 절차를 거친다. 12월 31일 이전까지 과제 수행자 선정절차를 종료하겠다는 것이다.
의무공고기간 경과 후 최종 사업자 선정까지는 아주 긴급한 경우 1개월, 통상적으로는 1.5개월~2개월이 걸린다. 따라서 최종 사업자 선정시점은 아주 짧게 잡아서 내달 말쯤, 통상적으로 절차를 진행한다면 내년 1월이 된다.
이는 결국 미래부가 올해 회계연도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지정 공모 절차를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 그동안 남겨둔 예산을 AIRI에 몰아주려는 꼼수라는 지적이다.
예산 집행상 당해 연도 12월 31일 전에 과제 수행자가 결정되고, 집행이 시작되면 종료 시점은 내년으로 넘어 가더라도 이는 위법이 아니고, 불용처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맹점을 이용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안 수석위원은 "2016년도 사업예산을 억지로 올해 내 집행 시작 시점을 잡아 어떻게 해서라도 AIRI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또 다른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라면서 "미래부는 무조건 12월 31일 전에 과제수행자 선정을 마무리하고 AIRI와의 협약을 체결하게 될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래부는 "이번에 공고된 AI 과제는 지난 4월부터 인터넷 공시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진행된 과제기획과정을 통해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종합하여 도출된 것"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이어 "관심있는 연구자라면 용이하게 과제기획방향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AIRI도 당시 진행중인 과제기획내용을 일부 인용한 데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는 지난 11일 AIRI 관련 2017년도 예산안 150억원의 심사를 보류했다. 야당에서는 이 예산이 AIRI에 특혜성으로 지원될 예정이라며 전액 삭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야당 주장대로 이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 AIRI는 내년부터 정부 예산을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