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12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2016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잠시 과거로 돌아가 1968년 4월 4일, 엘비스 프레슬리의 도시 테네시 주 멤피스를 찾은 흑인 인권 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로레인 모텔 2층 발코니에서 제임스 얼 레이가 쏜 흉탄에 맞아 숨졌습니다.
킹 목사가 멤피스를 찾았던 이유는 흑인 미화원들의 파업 때문입니다. 킹 목사가 찾기 두 달 전부터 이 도시에서는 1300여명의 흑인 미화원들이 백인과 같은 대우를 받겠다며 시급을 60% 이상 인상하고 비가 오면 반나절만 일해도 하루치 임금을 줄 것, 그리고 노조 설립을 인정할 것 등을 요구하며 동맹 파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 파업 소식에 멤피스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흑인 시민들이 연대하기 시작하면서 대규모 시위로 불길이 번졌습니다. 환경미화원들의 파업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정치파업'으로 '변질'됐던 셈입니다.
같은 해 프랑스에서는 비슷한 일이 순서를 바꿔서 일어납니다. 5월 11일 대학생들이 벌였던 '바리케이드의 밤',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수세에 몰렸던 이른바 '68혁명'에 힘을 실어준 것은 이틀 뒤부터 시작된 노동자들의 총파업이었습니다.
프랑스 전체 노동인구의 3분의 2가 넘는 1천만명이 자발적으로 '정치파업'에 돌입하면서 드골 대통령이 수도 파리를 버리고 도망치기까지 했고, 귀국한 뒤에도 한동안 하야 압력에 시달렸습니다.
한국에서도 '정치파업'이 당연했고, 그 정치파업이 세상을 바꾼 시절이 있었습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넥타이 부대'는 1987년 6월 항쟁의 마침표를 찍었고, 그보다 2년 전 대우차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시작해 80년대 후반 내내 이어진 총파업과 잇따른 노조 결성은 한국 경제의 풍경을 완전히 뒤바꿨습니다.
이제 사흘 전 한국. 민주노총은 오는 30일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노동 정책 폐기를 요구하는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총파업과 2013년 철도 민영화 반대 총파업 이후 3년 만에 개별 노동사안이 아닌 시국 사안을 위해 벌이는 '정치파업'입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고용노동부는 "쟁의행위는 근로조건 향상 등을 위해 보장된 권리로, 임금 등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정치파업을 진행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라는 입장만 반복했습니다. 보수 언론도 '불법파업' 프레임으로 민주노총을 맹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냈죠.
현행법으로는 단체교섭 대상 사항만 파업 사유로 삼을 수 있고, 이 단체교섭 대상 사항은 노조법 2조에 따라 노동조건에 직결된 사항만 다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 정부에게 "개별 사업장 이슈만이 아닌 경제·사회·정책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파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국제사회의 상식을 권고해왔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일하는 사람 누구나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에 따라 파업할 수 있다는 상식, 노동과 파업이라는 말이 생긴 뒤로 전세계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상식 말입니다.
청와대 비선 실세 사건에 주말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 가운데에도 노조의 적극적인 참여에 떫은 표정을 짓는 분들도 많습니다. 노동계 이슈를 끌고 와서 집회의 본질을 흐리고, 구태의연한 집회 문화만 반복해서 폭력 시위를 유발한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목소리에 민주노총 남정수 대변인도 "민주노총이 자기 권리만 찾고, 임금이나 단협만 앞세워 파업하는 이익 집단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 총파업으로 국민 대다수가 요구하는 역할에 부응하려는 것이고, 국민과 노조 사이에 있던 벽을 허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적어도 그동안 민주노총이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맞서 꾸준히 싸웠던 사실은 많은 국민들이 인정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총파업이 사회 변화를 이끌고, 사회 변화가 총파업을 불러냈던 옛날 이야기에 어떤 분들은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벌어질 총파업은 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요?
기자들 사이에 집회 역사의 산 증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의 제안을 함께 상상해보시죠. "항상 저녁에만, 아니면 주말에만 시위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낮에는 일하느라, 또 다음날 아침에는 일찍 출근해야 되니까 그렇죠. 노동자는 파업하고, 노동자 아닌 상점 주인들도 문을 닫고, 노점상은 좌판을 거두고, 선생과 학생들이 수업을 멈추고… 온 국민이 모여서 하루종일 매일 집회를 할 수 있는 힘, 그게 총파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