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왜 날 잡아가려고 그러느냐! 박근혜나 잡으러 가라"
지난 16일 부산에서 술에 취해 가정폭력을 휘두르다 출동한 경찰관을 향해 내지른 50대 남성의 말이다.
앞서 지난 13일 부산의 한 주점에서 행패를 부리던 40대 남성은 경찰에 연행되는 순간 "나보다 최순실이 더 나쁘다"고 소리쳤다.
경찰에 연행되기 전 홧김에 내뱉은 음주 소란자의 마지막 '일갈?' 이지만, 가슴속 한 켠이 '뜨끔'해 하는 경찰관도 적지 않아 보인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에 이어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선 경찰관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범법자를 잡아들이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뛰는 일선 경찰관들은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이 각종 범법 행위에 연루됐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매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경찰청 소속 A 경위는 "큰 도둑을 두고 작은 도둑만을 쫓아다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벼룩신문을 훔치다가 검거되는 노인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경찰관으로서도 힘이 빠진다"고 자조섞인 말을 했다.
부산 모 경찰서 소속 B경장은 "국민이 뽑은 대표의 명령을 수행하는 행정부의 손과 발이지만 최근 새로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며 "대형 사건을 눈 앞에 두고 눈치만 보고 있는 기분이다"고 털어놨다.
C경정은 "촛불 집회를 관리해야 할 입장에만 있지 않았다면 집회 자리에 앉아있고 싶은심정"이라며 "대통령부터 법을 안지키는데 누가 누굴 단죄할 수 있는지…"라며 말을 흐렸다.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권력들에 의해 경찰 고위급 인사가 좌지우지 됐다는 사실은 경찰관들의 힘을 더욱 빠지게 만들고 있다.
C경정은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소문으로만 돌던 말들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능력이 아닌 경찰조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특정인의 손에 의해 경찰인사가 이뤄지는 것은 조직 전체를 망치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에서 경찰 고위 인사를 강행하려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D총경은 "현재 경찰 수뇌부에 있는 인사들은 국정농단 가담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상황일 것"이라며 "현 정권이나 현 정권의 수혜를 받은 이들의 손에 이뤄지는 인사는 다른 논란을 낳을 것이다"고 우려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비난과 함께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경찰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E경감은 "권력의 눈치를 보다가 촛불이 켜지고 나서야 등떠밀리듯이 이뤄지는 수사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냐?"며 "경찰의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법을 우습게 알고 검찰 조사마저 마음에 내키는 대로 재단하는 상황에서 치안일선에서 뛰고 있는 경찰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