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는 프랑스 철학자 장-뤽 낭시의 저서로, '책과 서점에 대한 예찬론' 성격의 에세이다.
낭시의 책에 대한 단상은 사실 인쇄술의 발명이 인류에게 끼친 지대한 영향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인쇄본은 독서의 방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책이 인쇄본으로 대량 유통되기 이전에는 오랫동안 필사본이 낭송의 형식으로 읽혔다. 낭독은 수도원이나 학교에서의 공동체적 독서였음을 의미하는데, 인쇄본이 가져온 혁신적인 변화는 단지 책의 유통의 범위를 넓혀준 것 이상으로 내면의 독서, 개인의 독서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 있다. 15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활판 인쇄는 이처럼 유럽의 지성들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예를 원전으로 읽고 새로운 개인적 해석을 내놓으며 지적 교류를 맺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당시의 유럽을 생각할 때, 인쇄본을 통한 지식의 교류는 경제적 이해관계로 맺어진 우리 현시대의 공동체보다 어쩌면 동기 부여 면에서 더 결집력이 강하고, 결과물에 대한 활발한 수용과 비평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책 제목에 쓰인 프랑스어 'commerce'는 이 책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본뜻에 충실하자면, 그것은 상품의 '거래, 상업, 무역'이라는 뜻에 더 적합하겠지만, 실은 그보다 먼저 (프랑스에서는 13세기부터) 사람들 사이의 개인적 혹은 사회적 신분을 가리켰다. 이 의미에서 출발해 '생각의 교류, 관계, 소통, 만남과 공유'를 의미하는 단어로 통용되었다. 낭시가 책 제목에서 제시한 것은 말하자면 '생각의 교류', '사유를 통한 교제 혹은 관계'를 아우르는 '사유의 거래'를 의미한다. 책은 그 자체로 생각의 교류가 일어나는 장소이다. 책이 거래되는 서점은 사유를 통해 또 다른 관계가 맺어지는 장(場)이다. 따라서 사유의 교류와 그것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일원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다. 저자는 그가 읽은 수많은 독서의 결실을 글로 풀어내며 저자이기 이전에 독자임을 밝힌다. 그는 다른 독자들과 소통한다. 소통의 망은 무한히 넓다. 낭시가 이 책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듯이, 독서는 열림과 닫힘 사이에서 무한히, 다양한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접촉'이자 '참여'다.
사상 면에서 볼 때, 낭시의 글에는 책과 서점에 대한 놀랍고도 인상적인 문구들이 즐비하다. 책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의 이름을 부른다. 책은 그 안에 "수천 개의 의미와 수천 개의 비밀"을 간직한다. 책에서는 향기가 난다. 그윽한 냄새가 밴 서점에 머무는 동안 우리의 온갖 감각들이 열려버린다. 서점은 만남의 장소이자 사람들 간의 통로이다.
책 속으로책은 본질적으로 누구에게 말을 한다. 그것이 말의 대상이며, 그 자신에게 말을 건다. 자신에게 보내고, 상대방 즉 독자를 향한다. 책은 무엇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말한다. 혹은 누구에세 말하지 않고서는 무엇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말걸기는 그것이 말하거나 쓰는 '대상'과 떨어질 수 없고, 본질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21쪽
만지기만 해도 책은 독자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무게, 입자, 부드러움을 통해서 책이 전하는 목소리의 변화나 심정의 동요를 식별해낼 수 있다.-55쪽
책은 유성이다. 그것은 수천 개의 운석이 되어 흩어진다. 그것들의 떠돌이 운항은 새로운 책과의 갑작스러운 충돌이나 재회, 응결을 야기한다. 또는 이제껏 보지 못한 성질의 도면, 증보되거나 수정된 새로운 판본, 한마디로 거대한 별들의 운행을 만든다. -60쪽 {RELNEWS:right}
장-뤽 낭시 지음 | 이선희 옮김 | 길 | 96쪽 | 1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