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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오한기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

     

    오한기의 첫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는 홍학, 그 붉은 동물로 변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산으로 남긴 펜션을 관리하며 소설을 쓰는 ‘나’는 자신이 홍학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암컷 홍학이 참을 수 없이 그리운 날이면, 시외버스를 타고 동물원으로 가 하루종일 홍학 우리 앞을 서성인다. 펜션은 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사람들의 방문이 뜸하지만 ‘나’는 되레 원자력발전소를 좋아한다. 둥지를 짓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홍학처럼-그 자신이 바로 홍학이기에-‘나’는 원자력발전소를 둥지로 감각하고 이해한다. 하루는 햄버거가게의 노인이 ‘나’를 찾아와 원자력발전소를 철거하기 위한 서명을 받으려 한다. ‘나’는 그러한 노인을 이해할 수 없다. 원자력발전소는 인류를 멸종시키고 절대적인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인을 홍학의 천적인 물수리라고 여기고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쓴다.

    어느 날 저수지 위의 보트에서 잠든 여자아이가 발견된다. 여자아이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고 오로지 물수리가 만들어 파는 햄버거를 먹을 때에만 입을 열 뿐이다. ‘나’는 그런 여자아이를 ‘DB(디럭스 버거)’라 부르고 늘 햄버거를 사다준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아빠를 잃어버린 DB는 혼자 남는 일이 외롭고 아빠를 잊게 될까 두려워 항상 아빠에 대해 상상해왔고, 그러자 자신의 몸안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노라고 고백한다. 그 낯선 목소리를 무서워하지 않기 위해 목소리의 주인을 우유를 주는 상냥한 ‘암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수리는 햄버거가게에서 쉴새없이 햄버거를 만들지만 팔리지 않는다. 그는 원자력발전소 탓이라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낡고 허름한 이곳 대신 시내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으로 간다. DB는 아빠를 찾기 위해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돌며 지낼 때 물수리의 도움을 받았다. 오래전 사고로 어린 딸을 잃은 물수리는 DB를 자신의 딸로 착각하고 보호하는가 싶더니 곧 폭언과 학대를 일삼았다. 견디다 못한 DB는 물수리에게서 도망쳐 나와 ‘나’에게 오게 된 것이다. 물수리는 DB를 되찾기 위해 ‘나’의 펜션에 불시로 찾아오기 시작하고, ‘나’는 물수리로부터 DB를 지키고자 한다.

    책 속으로

    닉 드레이크, 그가 떠오른다.
    나는 다섯 내가 죽는다는 건 10월 사다리.(62쪽)

    사랑을 하고 있죠?
    DB가 묻는다.
    사랑이 무엇인가?
    내가 되묻는다.
    코끼리가 달력을 보는 것.
    DB가 말한다.
    시력검사를 하는 할머니.
    또 DB가 말한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죠?
    DB가 묻는다.(69쪽)

    죽음의 향기를 맡아.
    눈을 가늠자에 대고 조준.
    장전!
    손가락을 방아쇠에 올리고.
    죽음만을 생각해.(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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