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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 전가'에 '퇴진 요구'까지…朴이 자초한 '배신의 세월'

대통령실

    '혐의 전가'에 '퇴진 요구'까지…朴이 자초한 '배신의 세월'

    93년 자서전에서 "믿었던 사람들 배신을 통해 권력욕 똑똑히 봤다"

    (사진=자료사진)

     

    박정희 유신독재 타도 뒤 '측근들 배신'에 치를 떨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위기가 도래한 지금 다시 측근들의 배신에 시달리고 있다. 김기춘·안종범 등 청와대 참모는 각종 범죄혐의를 떠넘기고 있고, 서청원 등 친박 중진은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9일 "여러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며 여당 친박계 중진들의 '명예로운 퇴진' 권고가 박 대통령에게 접수됐음을 시사했다. 야권과 비박계의 탄핵안 발의가 초읽기에 들어간 와중에 방패막이 역할을 해야 할 '친위대'마저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한 게 된다.

    "여론재판하듯 이렇게 대통령을 몰아가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청와대 관계자)의 반발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박 대통령은 아직 특별한 대응이 없다.

    이에 앞서 검찰 수사과정에서는 전직 청와대 최측근 참모들의 배반이 이어졌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774억원 강제 출연 등 혐의가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차은택 비리 관련 의혹에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대통령 지시'로 차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식으로 떠넘겼다.

    안종범 청와대 전 정책조정수석, 김기춘 전 비서실장 (사진=자료사진)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약품구입 의혹에 대해 '구매 관리는 전적으로 청와대가 한다'고 발을 빼고 있다.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박 대통령을 도와준 인연'이 있는 최순실마저 대통령 연설문 등 불법 입수 경위를 '대통령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지경이다.

    박 대통령 '수족들'의 책임전가로 사태의 몸통이 드러나는 긍정적 효과는 있지만, 당하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영애 시절 겪은 배신의 트라우마가 상기되는 상황"(여권 관계자)이다.

    박 대통령은 1961~1979년 쿠데타를 거쳐 18년간이나 장기독재를 일삼은 선친 곁에서 권력의 최정상을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10·26 사태 뒤 '몰락한 독재자'의 딸로 장기간 칩거했다. 이 시절 선친의 특근·참모들이 자신을 외면했던 데 대해 크게 좌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박 대통령은 배신에 대한 분노를 수차례 드러냈다. 책에는 "당시 내가 알고 있던 그들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이 한결같은 경우가 그야말로 드물었다", "모두가 변하고 또 변해 그때 그 사람이 이러저러한 배신을 하고 이러저러하게 변할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라고 적혔다.

    "뭐 도울 일이 없느냐고 안타까운 표정까지 지어가며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던 것이 엊그제 같던 사람이 막상 일을 맡기려 하니 결코 자신에게 힘든 일이 아님에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지고 만다"거나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통해 사람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똑똑히 보았다"는 구절도 있다.

    배신의 트라우마 탓에 박 대통령은 그동안 충성도를 중시한 인사를 일삼아왔는데, 이로 인해 능력·자질이나 도덕성은 도외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또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만 따지다보니 인재풀이 좁아지고, 친일·독재 미화 국정교과서 등 대통령 심기보좌로 국정이 편향됐다는 지적도 있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고르고 고른 충신들이 다시 자신을 배신하는 상황을 맞았다. 여권 관계자는 "결국 대통령 본인이 자초했다. 측근들에게 잘못된 확신을 줬다"며 "측근들은 박 대통령이 원하는 것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민의를 확인하고 비겁하나마 각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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