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대한민국 헌정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패와 무능, 위선에 분노한 국민들은 9일 헌법이 정한 방식으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지난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 일이다. 하지만 당시의 탄핵은 민심에 반해 국회가 앞장섰다 역풍을 맞았던 반면 이번에는 국민이 정치권을 잡아끌었다.
국회는 이날 오후 3시 본회의를 열어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야당과 무소속 의원이 172명인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에서 60여표가 탄핵에 참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남아있긴 하지만 230만개의 촛불로 상징되는 성난 민심이 전혀 식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망은 그리 나쁘지 않다.
탄핵안 가결로 수개월간 이어져온 정국의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제거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하야 및 탄핵은 물론 거국중립내각이나 책임총리제, 4월 퇴진론 등까지 어지럽게 얽히며 극도의 혼란이 계속돼왔다.
물론 헌재의 탄핵심판 전까지는 황교안 총리 권한대행 체제가 되기 때문에 혼미한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헌재 결정이 언제 나올지도 현재로선 미지수다. 그간의 행적으로 미뤄 헌재 결정에 어떤 식으로든 간여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헌재가 권고 규정을 지킨다 해도 최장 6개월의 심리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동안 정치권은 조기 대선 가능성을 상정해 개헌과 이를 매개로 한 정계 개편 논란을 벌이며 격랑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새누리당의 친박‧비박계를 갈라치며 인적 청산은 물론 해체까지 요구하며 압박할 공산이 크다.
(사진=청와대 제공)
이와 함께, 더욱 탄력 받은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황교안 총리 교체를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지난 7일 CBS노컷뉴스와 회견에서 "대통령이 탄핵되면 거기에는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에 대한 불신임이 포함된 것"이라며 황 총리 퇴진을 위한 '정치적 해법'을 강조했다.
수세에 몰린 새누리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생존 본능을 발휘할 것이다. 난파선의 구명보트를 차지하기 위한 여당 내 계파간 투쟁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특히 친박계는 '폐족'을 넘어 '멸족' 위기의 곤궁한 처지에서 한껏 몸을 낮추겠지만, 야당의 '부역자 색출' 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당의 주도권을 순순히 내주려 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여 비박계와의 사생결단식 당권투쟁과 그에 따른 분당 가능성이 예상된다.
이미 양 계파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네가 당을 떠나라"고 서로 삿대질하며 예비 전초전을 치렀다.
삐걱대던 야권공조도 다시 파열음을 낼 가능성도 있다. 탄핵안 가결의 1차 목표가 달성되고 대선정국이 성큼 다가오면서 고지 선점을 위한 정파간 암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혼돈에도 불구하고 탄핵이 부결됐을 때 불어닥칠 엄청난 후폭풍에 비하면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이 모든 것이 헌법에 의한 국정, 헌정질서에 따른 과정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