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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긴축정책이 위험하다면 그 대안은?

    신간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

     

    마크 블라이스의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는 '긴축'을 키워드 삼아 2008년 이후의 세계 정치경제의 흐름을 명쾌하고 짚음으로써 유럽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제시해주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시장- 특히 금융 시장-의 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신자유주의는 힘을 잃었다. 케인스주의를 찾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졌다. 전 세계는 정부가 대규모로 은행 구제에 나서는 것을 목도했으며, 각종 사회보장제도들을 입안하고 강화하는 것을 목격했다. '거장의 귀환'이었다.(본문 121~123, 131쪽)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반격은 독일과 유럽중앙은행에서 시작되었다. G20이 채택한 공동성명서는 '성장친화적 재정 건실화'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 중단을 촉구했다. 짧은 시간 사이에 케인스주의에서 긴축으로 기조가 바뀌었고, 많은 선진국 경제 관료들과 중앙은행장들이 여기에 동의한 것이다.(본문 130~134쪽)

    얼마 지나지 않아 성명서를 넘어 여러 유럽 국가들에 실제로 적용되기에 이른다. 2010년, 그리스를 시작으로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의 국채 수익률이 치솟아 오르면서 이른바 '국가부채 위기'가 발발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 5월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가 개입했는데, 이들은 구제금융과 차관을 제공하면서 피그스 국가들에게 공무원 임금과 연금을 비롯한 공공 지출을 대규모로 감축하는 긴축정책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발맞춰 미국 의회에서도 재정적자에 대한 공격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루미니아, 에스토니아, 불가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레블 동맹이라 불리는 국가들에서까지 긴축정책이 시행되었다. 케인스가 가고 긴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긴축은 왜 이토록 빠르게 당대의 정책으로 자리 잡았을까? 유럽에 긴축이 불어 닥친 결정적인 계기는 이른바 ‘피그스’라 불리는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아일랜드에서 터진 재정 위기였다. 금융 위기가 진정되고 국채 이자율의 폭등에 의한 유동성 경색으로 재정 위기가 터지자,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옹호하는 목소리에 제동이 걸렸다. 특히 유럽 재정 위기를 전했던 국내 언론들이 잘 보여주었듯이 복지 지출이 뭇매를 맞았다. 국가부채를 무절제하게 늘리는 방만한 재정 운용이 위기의 원인이었던 만큼, 이제는 건전한 재정 유지를 위해서 지출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당연히 위기 당사자들에게는 구제금융과 차관의 조건으로 긴축정책이 부과되었다.


    대다수의 언론들은 국채 수익률이 급등한 원인이 방만한 재정 운용에 때문에 늘어간 국가부채 탓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이런 진단이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의 본질을 흐리는 거대한 속임수임을 보인다. 유럽 국가들의 국가부채 규모가 늘어간 중요한 근본 원인 중 하나는 2008년 당시 흔들렸던 은행들을 구제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중앙은행과 유럽 중심국들은 은행 위기가 발생하도록 놔둘 수 없었다.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국채에 대규모로 투자했던 은행들은 규모가 너무 커서 이 은행들이 무너지면 유럽 전체 은행 시스템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긴축은 그래서 시행되었다. 대형은행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 은행들이 사들인 자산의 가치를 유지시키고, 흔들리는 은행들의 구제를 대비해서 경기 위축, 임금 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국가 재정을 확보해야 했던 것이다. 긴축이 실행되는 진짜 이유는 은행을 살리기 위함이었다.(본문 166~175쪽)

    피그스 국가들-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아일랜드-의 방만한 재정 운영이 경제 위기의 원인인 듯이 말하는 언설은 대안을 긴축으로 몰아간다. 긴축으로 은행들과 은행들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는 유지되지만 자산이 적고 그달 그달의 임금과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신음하게 된다. 경제 정책을 평가할 때 그것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지, 누구에게 책임과 부담이 돌아가는지가 중요하다. 긴축은 금융 자본과 경제 엘리트들의 잘못된 정책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정책이다.

    2013년에 쓰인 이 책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원리주의적인 긴축정책은 저소득층의 삶을 파괴하고, 불안정성을 가중시켜 정치와 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증폭시키기에 궁극적으로 정권이 전면적으로 교체되거나 파멸적인 결과로 치달아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재의 경제 제도로 이득을 보는 사람을 포함하여 누구도 좋을 것이 없다고 경고한다.(본문 57~58쪽) 2014년에서 2016년 사이 유럽은 정확히 이 예측을 따라가고 있다. 긴축정책을 받아들인 국가들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고,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으며, 불평등이 심화되어 사회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등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 도약하며 기성 정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들은 사회에 깔린 불만을 유럽연합의 기획과 이민자들에게 돌리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긴축이 좋은 선택이 아니고, 심지어 위험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어떤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할까? 일단 하나의 단초는 현재 긴축을 불러온 근원이 실제로는 은행 위기라는 것에 있다. 즉 투자 은행이라는 모델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투자 은행들을 구제하고자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는 대가로 각종 재정정책과 공공 지출을 줄이는 것이 경제 전체를 망쳐놓는다고 한다면, 그 비용을 고려하여 당장의 고통을 감수하고 은행이 파산하도록 두거나 투자 은행 모델 자체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저자는 그 사례로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를 제시한다. 아일랜드는 은행을 국가가 구제하여 여전히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실 채권을 처리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반면, 아이슬란드는 부실 은행을 청산하고 건전한 실업율과 경제성장률로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본문 401~415쪽)

    국가부채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국가부채는 경제성장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의 국가부채를 줄이면서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종류의 증세가 있지만 저자는 금융억압과 최고 소득 계층을 겨냥한 세금을 제시한다. 여기서 금융억압은 채권자에게 세금을 물리는 방법이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세수 증가를 통해 긴축 없이 국가부채를 줄일 수 있다.(본문 415~422쪽) 무엇보다 이 길이 공정한 길이며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는 것을 막는 길이다. 그간 위기를 발생시킨 은행 시스템을 통해 자산을 늘린 사람들과 구제금융으로 위기의 책임을 피해간 이들에게 은행 위기와 국가 재정 위기의 고통을 분담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듯 경제와 정치는 서로 불가분으로 엮여있다. 시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경제정책은 유지불가능하다. 유럽의 경험은 건전한 경제를 위해서는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성장을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 못지않게 책임과 부담을 공정하게 분담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함을 환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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