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빈대와 인류의 공존과 불화에 관한 25만 년 역사를 조명한다. 빈대에 우연히 물린 사소한 경험에서 시작된 저자의 빈대 탐험은, 이 곤충이 종교와 철학, 문학과 예술, 문화와 생활양식 등 다방면에 걸쳐 인류에게 수많은 영감을 가져다 준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날 화학 살충제를 발명해 빈대 없는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현대인들과 이에 맞서 새로운 진화를 감행하는 빈대의 도전을 소개하며 인류와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제시한다.
빈대는 다양한 예술작품과 문헌 속에서 빈대는 인류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존재였다. 빈대는 악취를 풍기고, 성병을 옮기며, 악마를 따르는 괴물로 묘사되는 등 불결하고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형상화되었다.
인류는 이런 빈대를 향해 기이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빈대를 쫓아내려고 이집트인은 주문을 외웠고, 그리스인은 죽은 동물의 발을 미끼로 던졌으며, 발칸인은 바닥에 말린 콩잎을 깔았다. 어떤 이들은 신체에 치명적인 수은을 분사하기까지 했다. 한편, 빈대를 각종 치료제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중국인은 피부 연고제로, 로마인은 귓병 치료제로, 미국인은 변비, 기침, 치질 등에 사용하는 만병통치약으로 빈대를 이용했다. 이처럼 빈대는 인류가 기피해온 해충이면서도, 동시에 인류의 일상생활을 변화시킨 동반자였다.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을 거쳐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20세기 인류는 빈대를 ‘박멸 가능한 벌레’의 자리로 끌어내린다. 시민들의 건강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국가, 과학을 인류 최후의 연금술로 숭배하는 연구자들, 모든 것을 화폐의 무게로 환산하는 자본가들은 빈대를 멸종 위기로 몰아넣는다. 이들은 수많은 화학 살충제들을 발명해 “원자폭탄을 터뜨리듯” 분사하며 빈대를 향한 인류의 오래된 두려움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그러나 생태주의자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경고했듯 인간과 자연은 서로 정복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자연은 살충제로 멸종 직전에 놓인 빈대에게 인류와 공존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돌연변이 유전자를 선사한다. 저자는 20세기 후반에 새롭게 진화한 빈대가 인류 앞에 다시 등장하는 과정과, 혼란과 공포에 빠지는 현대인들을 대비시키며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무모한 시도를 냉정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빈대에게 괴롭힘을 당해온 인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인간은 빈대에게 시달릴수록 이 곤충을 자신에게 옮긴 것으로 의심되는 자들을 향해 비난과 혐오를 표출했던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빈대의 진원지라고 추정되는 난민촌, 노숙자 쉼터, 공공주택 등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거주지를 방문해, 정말로 그곳에 빈대가 있는지를 파헤친다. 그리고 이들을 향한 의심과 비난의 정체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한다.
과연 인류는 가까운 미래에 빈대를 박멸할 수 있을까? 빈대는 수십만 년 동안 인류라는 종의 특성과 생활양식에 적응해왔고, 인류 역시 빈대를 통해 수없는 이야기를 창조했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세계를 정복한 흡혈 개척자 빈대와 갖은 상상력을 동원해 이에 맞선 인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류와 자연,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빈대에 대한 두려움은 원시적이었다. 피의 주술적 힘, 꿈을 꾸는 시간, 가정이라는 이름의 성소, 식인 행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공격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혼합되어 있다.” (중략) 요점은 침대가 휴식의 공간 다른 말로 가장 힘든 날에도 편안함을 제공하는 보호 공간이라는 것이다. (중략) 요컨대 빈대는 성스러운 침대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인 환상을 깨부수는 원흉이다. _ 200, 201쪽, 〈6장 공포: 자다가 무언가에 물릴 때〉 중에서
내가 이야기를 해 본 모든 사람의 주장은 등장인물만 다를 뿐 큰 줄거리는 비슷했다. 빈대가 20세기 중반에 어느 순간 깜짝 사라졌다가 반세기가 흐른 후 다시 나타났고,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람이나 지역은 대개 그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과는 인구 통계학적으로 다른 집단에 속한다는 것이다. (중략) 빈대는 지위고하, 남녀노소, 인종 등 사람을 가리지 않고 피를 빨아 먹도록 진화했다. _ 315, 316쪽, 〈9장 종의 기원: 빈대 기원의 비밀을 밝혀라〉 중에서
빈대를 동굴에서 주택으로 이사시킨 것도 인간이었고, 나아가 전 세계로 퍼뜨린 것도 우리 인간이었다. 빈대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독특한 특징들에 적응함으로써 이 숙주를 흡혈하도록 진화했고, 사회적 동물인 인류가 여행하고 서로 상호작용하는 내내 인류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중략) 요컨대 우리는 빈대를 싫어하고 혐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빈대를 창조한 것 또한 우리 인간이었다. _ 339쪽, 〈9장 종의 기원: 빈대 기원의 비밀을 밝혀라〉 중에서 닫기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