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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녹인 우리의 노래…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

문화 일반

    광장 녹인 우리의 노래…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현장 속 시민들의 모습(사진=이한형 기자)

     

    살을 에는 듯한 추위였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열두 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는 올겨울 들어 최강 한파가 불어닥쳤다. 이날 오후 6시가 가까워 올 무렵, 가수 한동준이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 오르며 본집회의 시작을 알렸다. "일단 여러분 마음을 조금 녹여 드릴 수 있는, 제 노래 중에서 조금 알려진 곡 먼저 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한동준은 '너를 사랑해'를 불렀다.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 내 품안에 잠든 너에게/ 워우우워 우워워 너를 사랑해…"

    노래가 시작되자 광장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시민들이 무대 앞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앞뒤로, 양옆으로 느껴지는 체온 덕일까, 추위가 다소 누그러지기라도 했다는 듯이 13만여 시민들은 무대에 조금씩 집중하고 있었다.

    첫 곡을 마친 한동준은 "고1과 중1인 제 딸들을 데리고 광화문에 나왔는데, 굉장히 저항정신이 살아 있는 딸들이 됐다"며 "그래서인지 집에서 무슨 부당한 일이 벌어질 때 (딸들이) 무지하게 따지고 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뼈 있는 웃음을 자아냈다.

    한동준은 두 번째 노래로 김민기의 '친구'를 이어갔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노래는, 30년 전 이날 독재정권의 모진 고문 끝에 숨을 거둔 박종철 열사와, 지난 7일 촛불집회 현장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며 분신한 정원스님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노래를 마친 한동준은 "저는 사랑 노래 부르고,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살려고 해 왔는데 국가가 안 도와준다. 그래서 노래 하나를 만들었다. 약자들이 억압받고 소수가 무시되는 사회를 향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며 끝으로 '사람이 사람으로'를 불렀다.

    "수줍어하지 말아요/ 당신의 잘못 아녜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가 고칠 수 있어요/ 고개를 들어 말해요/ 억눌려 왔던 모든 일/ 자신을 믿어 보세요/ 우리가 만들 수 있어요/ 사람이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도록/ 희망을 잃어버린 세상에 희망을/ 우린 믿어요 기쁨의 날 올 때까지/ 이제 다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을/ 함께해요 우리가 꿈꾸던 세상을 위해"

    ◇ "나란히 가지 못하더라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노래 부르면서"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조기탄핵 송박영신 10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이날 행진에 앞선 본집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무대는 가수 손병휘를 위시한, '박근혜 퇴진'의 뜻을 모아 광화문광장에 캠핑촌을 꾸린 음악인들이었다. 이들이 첫 곡으로 부른 민중가요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는 두 달 넘게 이어오고 있는, '이 그늘진 땅'을 밝히는 촛불집회에서 '따뜻한 햇볕 한줌' '타오르는 작은 횃불 하나'로 자리잡은 음악인들의 초상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줌 될 수 있다면/ 어둠 산천 타오르는/ 작은 횃불 하나 될 수 있다면/ 우리의 노래가 이 잠든 땅에/ 북소리처럼 울려 날 수 있다면/ 침묵 산천 솟구쳐 오를/ 큰 함성 하나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 하늘 첫 마을부터 땅끝마을까지/ 무너진 집터에서 저 공장 뜰까지/ 아아 사랑의 노래 평화의 노래/ 큰 강물로 흐를 그날 그날엔/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움추린 어깨들 다 펴겠네/ 닫힌 가슴들 다 열리고/ 쓰러진 이들 다 일어나/ 아침을 맞겠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모두 하나될 그날이 오면/ 얼싸안고 춤을 추겠네/ 한판 대동의 춤을 추겠네…"

    노래를 마친 손병휘는 "기타 치다가 손가락에 동상 걸리기 딱 좋은 날이다. 박근혜 감옥 보내기에 좋은 날씨다"라며 촛불집회의 감동을 표현한 곡 '촛불의 노래'를 이어갔다.

    "이 여린 반딧불/ 이 여린 반딧불/ 광화문 밤거리에/ 가득한 촛불의 바다/ 눈물의 바다/ 기쁨의 바다/ 긴 세월 짓밟혀 온/ 우리들의 자존심/ 우리들의 정의감/ 부활하는 바다/ 여기 어린 자식 손을 잡고/ 친구들이 어깨동무하며/ 거센 바람 앞에 작은/ 촛불 하나 밝혀주니/ 광화문 밤거리에/ 촛불들이 춤춘다/ 희망들이 춤춘다/ 얼굴들이 춤춘다…"

    손병휘는 "광화문 캠핑촌 촌민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캠핑촌을 차린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지금 손가락이 말을 안 듣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지만, 여기 앉아 계신 분들만큼이나 우리가 힘들겠습니까. 그리고 쌍용차에서, 유성기업에서 해고 당한 여러분만큼 우리가 고통스러울까요. 그리고 세월호 부모님들만큼 가슴이 아리겠습니까…. 그렇지만 항상 나란히 가지 못하더라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노래 부르면서 말이죠."

    그렇게 그는 마지막 노래 '나란히 가지 않아도2'를 통해 추운 겨울 한파에도 광장을 메운 시민들, 광장에서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한마음으로 '박근혜 너머'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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