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박근혜 대통령께서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해 1월1일 반기문 당시 유엔사무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이 한 마디가 대선주자로서 정치무대에 서게 된 반 전 총장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합의 반대 여론을 의식해 비판적 입장을 내비치고는 있지만 명확한 답변이 나오지 않아 이제는 과거사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 재협상 시사→"내용 몰라"→"기틀 잡혔다"귀국 후 해당 문제에 대한 반 전 총장의 답변은 미묘하게 바뀌어 왔다. 연일 그에게 입장을 묻는 질문이 이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길 인터뷰에서 "만약 위안부 합의에 따라 거출한 10억 엔이 소녀상 철거와 관련된 것이라면 잘못된 것"이라며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뜻을 시사했다. '합의 환영'이라는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16일에는 조금 더 모호한 표현이 추가됐다. 그는 "(합의가) 소녀상 철거와 관련돼 있는지, 안 돼 있는지 저는 내용을 모른다"며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18일에도 관련 질문이 나오자 "위안부 할머니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그런 합의는 아니지만 기틀은 잡혀간 것이라는 뜻"이라며 "완전히 끝났다는 식으로 그렇게 오해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계속 저를 따라다니면서 위안부 문제가 어쨌다 이런 거 하지 말라"고 강조한 그는 19일 "어제 길게 답변했다"며 질문을 일축했다.
이렇다보니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9일 "반 전 총장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 분명하게 과거 발언에 대한 입장과 스스로의 소신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 모호한 답변에 과거사 인식까지 도마 위에
(자료사진/노컷뉴스)
한일 위안부 합의 입장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따라붙는 물음표는 자연스럽게 반 전 총장의 과거사 인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날 언론을 통해 공개된 2013년 반 총장 대담집에는 "과거사를 놓고 너무 많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일본 정부가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일본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했지요"라는 그의 발언이 적혀있다.
일본과의 과거사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비판 기류 속에서 반 전 총장은 짜증섞인 반응까지 보이며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반 전 총장은 기자들을 겨냥해 "이 사람들이 와서 그것(위안부 문제)만 물어보니 내가 마치 역사의 무슨 잘못을 한 것 처럼…."이라며 "나쁜 놈들"이라고 말해 도마에 올랐다. 계속되는 질문에 손가락질까지 하며 불쾌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앞으로도 반 전 총장은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올바른 용단"이라는 과거 발언 때문에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줄을 타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한편 광주와 대구, 김해 등 각지에서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반 전 총장의 방문에 반발하며 연일 피켓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은 반 전 총장의 명확한 입장 표명과 '합의 환영'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