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 정상에 오른 OK저축은행의 자존심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플레이오프 진출은 이미 좌절됐고 자칫하다가는 창단 첫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칠 위기에 몰렸다. 1년 새 전혀 다른 팀으로 변해버린 OK저축은행.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 외국인 선수 농사는 '흉작'
OK저축은행의 2016~2017 시즌 외국인 선수 농사는 썩 좋지 않다. (왼쪽부터) 롤란도 세페다, 마르코 보이치, 모하메드 알 하치대디. (사진=한국배구연맹, OK저축은행 제공)
OK저축은행의 실타래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외국인 선수 선발 과정에서부터다. OK저축은행은 지난해 5월 열린 V-리그 남자부 사상 첫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7개 구단 가운데 가장 늦게 지명권을 행사했다.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총 140개의 구슬 가운데 5개만 넣었으니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늦은 순위에도 불구하고 나름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쿠바 대표팀의 주장 롤란도 세페다를 데려온 것이다. 물론 밋차 가스파리니(대한항공)과 크리스티안 파다르(우리카드)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이미 다른 팀이 낚아챈 상황이었다.
차선책으로 택한 카드가 바로 세페다였다. 어깨 부상 여파로 인해 트라이아웃에서 제기량을 선보이지 못했지만 부상만 털어낸다면 V-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자원이라는 김세진 감독의 강한 믿음이 있었다. 로버트 랜디 시몬(전 OK저축은행)과 레오(전 삼성화재) 등 쿠바 출신 선수들 한국 무대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점도 세페다를 기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세페다는 결국 한국 무대를 밟지 못했다. 밟을 수가 없었다. 쿠바 대표팀의 일원으로 월드리그에 참가하기 위해 핀란드를 찾았다가 집단 성폭행 혐의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실력은 둘째치고 인성에 문제가 있는 선수를 계속 안고 갈 수 없는 OK저축은행은 결국 외국인 교체를 단행했다.
불미스런 사건으로 팀을 떠난 세페다를 대신해 마르코 보이치가 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상 악령이 그를 덮쳤다. 부상으로 인해 V-리그 개막전 열리는 한국배구연맹(KOVO)컵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 OK저축은행은 3연패로 조기 탈락했다.
다행스럽게 부상을 털어내고 리그에 적응하는 듯 보였지만 단 8경기 만에 발목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OK저축은행은 마르코를 대신해 모하메드 알 하치대디를 데려오며 다시 한번 외국인 선수 교체를 단행했다.
모하메드는 지난해 12월 3일 대한항공과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성적은 좋았다. 34득점에 공격 성공률 50.8%로 만점 활약을 펼쳤다. 파워가 다소 부족한 것이 약점으로 꼽혔지만 높은 타점으로 이를 보완했다.
하지만 모하메드의 장점도 다른 팀들의 분석에 의해 이내 힘을 잃어갔다. 특히 지난 26일 우리카드와 경기에서는 4득점에 그치는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 당시 김세진 감독은 "외국인 선수 싸움에서 완패했다"고 털어놨다.
◇ '부상병동' OK저축은행, 해결사 부재도 고민
해결사 송명근(왼쪽)이 부상 여파로 인해 아직까지 정상 컨디션을 찾지 못하자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의 속은 더 타들어가고 있다. (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부상은 외국인 선수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국내 선수들의 줄부상도 OK저축은행을 덮쳤다.
센터 박원빈은 심각한 발목 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했다. 토종 에이스 송명근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양 무릎 수술을 받았다. 강영준도 부상으로 신음했다. KOVO컵에서도 이 선수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송명근의 부상은 너무나 뼈아프다. 지난 시즌 시몬과 함께 팀 공격을 주도했던 송명근의 공백으로 OK저축은행의 화력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김세진 감독은 부상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송명근을 V-리그 개막전에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무모한 도전으로 끝이 났다.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도입으로 국내 선수들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송명근의 부재는 OK저축은행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리그 순위표 상위에 포진한 팀들을 살펴보면 국내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 못지 않은 성적을 뽐내는 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대한항공은 공격종합 1위에 올라있는 김학민의 활약이 돋보인다. 외국인 선수 교체를 준비하는 현대캐피탈은 문성민 외국인 선수에 버금가는 활약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카드도 최홍석이 파다르와 함께 팀 공격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전력은 전광인과 서재덕 콤비가 바로티와 환상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
송희채가 레프트와 라이트를 오가며 공격에 무게감을 더했지만 송명근의 공백으로 다소 힘이 빠졌다.
부상 악령과 외국인 선수 흉작으로 챔피언의 위엄을 상실한 OK저축은행. 이번 시즌 그들에게는 단 10경기만 남았다.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더라도 플레이오프 진출은 불가능하다. 이미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오히려 일찌감치 다음 시즌 준비에 돌입하는 것이 꼬인 실타래를 푸는 일보다 현명한 선택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