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 하나는 들어줘야 신여성""구두 한 켜레=벼두섬, 용맹스러운 아가씨"
서울시가 추진한 '돈의문 박물관 마을' 가림벽화를 두고 여성 비하 논란이 불거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1920~1930년대 문화를 풍자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풍자의 목적과 대상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재개발 가림벽에 "빽 하나는 들어줘야 신여성"이라니…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서울시가 종로구 신문로2가 7-24번지 일원 1만 271.56㎡ 구역에 추진하는 도시재정비사업이다.
시청은 이 구역이 한양도성 서쪽 성문(돈의문) 안 첫 동네(새문안동네)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지난 2016년 6월부터 문화시설 조성에 나섰다.
이곳엔 1920~1930년대 당시의 골목이 그대로 남아있다.
서울시가 추진한 '돈의문 박물관 마을' 가림벽화를 두고 여성 비하 논란이 불거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1920~1930년대 문화를 풍자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풍자의 목적과 대상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캡처)
여성 비하 논란이 불거진 그림이 있는 가림벽은 총길이 226m다. '1920년대 서울 거리를 거닐다'라는 주제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 중 논란이 된 부분은 "그 시절에도 인기 많았던 전문직 남성", "구두 한 켜레=벼두섬, 용맹스러운 아가씨", "아내와 아이를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의 운명", "빽 하나는 들어줘야 신여성" 등이다.
이들 문구에는 각각 거대한 몸집의 남성 옆에 선 가녀린 여성, 벼두섬 위에 올래 치맛자락을 든 여자와 곁에서 그를 바라보는 수염난 남성이 그려졌다.
또, 화장을 고치는 여성과 어린 아이를 수레에 끌고 가는 남성, 털목도리를 두른 여성과 뒤에서 짐을 들고 따라가는 남성 등의 그림도 있다.
◇ 서울시 관계자 "오해…전체 맥락 봐달라"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1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전체적인 맥락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데 협소한 부분으로 곡해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의 창작이 아니라 1920~1930년대 한국 식민지 시대 근대문물이 들어올 때 세태 풍자를 위해 당시 신문들이 만평을 낸 걸 리터치해 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벽화 속 그림은 안석영 화백이 모던걸, 모던보이를 풍자하며 그린 '만문만화'에서 착안한 것이다.
관계자는 "원래 있던 그림을 100% 가져온 것이고 오해 소지를 없애려고 원문 만화를 주변에 판넬으로 붙여뒀다"며 "논란이 된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림벽 만화는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 혐오, 여성 비하, 남성들의 가부장적 세태를 풍자한 내용"이라며 "그런 사진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돌아봐야 한다는 걸 담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벽화에는 온라인상에서 여성 비하 논란이 불거진 부분 외에도 배려 없는 남성 등 당시 모습을 풍자하는 모습이 담겼다.
"경성의 전차에도 쩍벌남과 누워자는 사람이"라는 문구와 함께 누워자는 남성과 다리를 큰폭으로 벌린 채 양옆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남성의 그림 등이다.
또, 짐을 들고 어린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조금 자란 아이를 다른 손에 꼭 잡은 어머니의 모습과 "업고, 잡고, 들고… 엄마의 외출"이라는 그림도 포함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해의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기 위해 고민 중"이라며 "젠더 이슈 관련해 최소한의 빌미도 남기지 않기 위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풍자 드러나지 않고 적절한지도 의문" 지적도…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차옥경 사무처장은 다른 해석을 내놨다.
박차 처장은 1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울시에서 가림막을 설치할 때 풍자라는 목적을 명확하게 기재했느냐"라며 "기획의도가 풍자라면 풍자로 읽힐 장치나 설명이 좀 더 확실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의 풍자 의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이 방법이 적절한지도 의문"이라며 "'그 땐 이랬어' 보여주기로 풍자했다고 주장은 하더라도 그걸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박차 처장은 이어 "여성혐오나 여성비하, 가부장제의 한계는 수십년간 논란거리인데 공공기관은 왜 변하지 않느냐"며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가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걸 한 번 더 절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젠더 전문관이 있더라도 '위탁'이거나 '공무'라면 내용물을 꼼꼼하게 점검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내 딸의 일, 내 어머니의 일'로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