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KT에서 LG로 트레이드 된 농구 국가대표 슈터 조성민이 1일 오후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 체육관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제가 본 창원 LG는요"
조성민(34)은 갑자기 '창원 LG'라고 했다. 프로농구 관계자들과 혹은 그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 보통은 서로 구단명만 말한다. 연고지까지 붙여서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게 편하니까.
1일 오후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조성민은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창원 LG'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구단명만 말하다 농구 팬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대답을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제가 본 창원 LG는, 늘 팬이 많으니까 저런 곳에서 뛰면 선수로서 행복하겠다 생각했어요. 농구의 고장 같아요. 농구 열기가 대단해서 창원을 좋아했어요. 좋은 기억도 많구요"
농구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한 창원에 대한 인상은 강렬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창원을 강조했던 것 같다. 그러나 조성민은 정작 자신이 창원 팬의 응원을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부산이 아닌 지역의 농구 팬에게 박수받는 날이 올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부산 kt와의 갑작스런 이별KBL 출범 20주년을 하루 앞두고 프로농구계가 들떠있던 지난 1월31일 오후 3시쯤 조성민은 부산에 위치한 한 호텔에 머물다 조동현 부산 kt 감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자신이 LG로 트레이드됐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뭐지? 했어요. 다들 운동하러 나가는데 트레이너가 잠깐 기다리라고 해서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어요. 트레이드까지는 생각 못했어요. 내가 아니라 다른 선수가? 그런 생각은 했어요. 그 대상이 나라고 하니까 당황스럽지도 않았어요. 놀랐다기보다는 이게 진짜인가? 멍한 느낌이었죠"
지난달 31일 KT에서 LG로 트레이드 된 농구 국가대표 슈터 조성민이 1일 오후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조동현 감독은 왜 트레이드가 이뤄졌는지 이해를 구하면서 조성민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루종일 어떤 위로의 말을 들어도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조성민은 그대로 떠날 수 없었다. LG 선수단 숙소가 위치한 경기도 이천으로 떠나기 전 먼저 사직체육관을 찾았다.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조성민과의 갑작스런 이별에 대성통곡을 한 후배도 있었다.
조성민은 "10년 넘게 뛰었던, 애정을 갖고있는 팀인데 인사도 없이 떠나는 것은 내 자신이 원하지 않았어요.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선수를 보면서 내가 그래도 이 팀에서 괜찮았구나 싶으면서도 마음이 착잡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성민은 2006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8순위 지명을 받고 kt의 전신 부산 KTF의 유니폼을 입었다. 조성민이 걸어온 길은 곧 kt 구단의 역사다. 데뷔 시즌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았고 2011년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역대 kt 선수 가운데 2번이나 리그 베스트5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조성민 뿐이다.
지난 1월22일 KBL 출범 후 처음으로 부산에서 올스타전이 열렸다. 올스타전을 주관한 KBL조차 깜짝 놀랐을 정도로 많은 관중이 몰려들어 뜨거운 열기를 분출했다. KBL은 김주성, 김태술 등 부산이 고향인 선수들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다.
그러나 정작 부산을 대표하는 프로농구 구단의 간판 선수인 조성민은 그곳에 없었다.
당시 부상 재활을 마치고 코트 복귀를 준비하던 조성민은 경기도 수원의 kt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조성민은 "부상 중이었지만 제가 부산에 가서 홍보를 돕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다쳤지만 홍보는 할 수 있었는데, 이제 부산에서 언제 또 올스타전을 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더 아쉬웠어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부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본 경기와 이벤트에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올스타전 점프볼을 앞두고 코트에 나가 "부산 올스타전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 정도만 했어도 그림이 좋았을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조성민은 아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과의 아쉬운 이별은 이미 그때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올스타전이 끝나고 9일이 지나 조성민은 LG 선수가 됐다. kt는 리빌딩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조성민을 김영환과 맞바꿨고 LG의 2017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받았다.
"'너무 고생하는데 보다 더 좋은 팀에서 뛰면 좋을텐데'라는 주위 얘기를 들어도 이적을 상상해본 적은 없었어요. 작년 '빅 스리'(이종현, 최준용, 강상재)가 나오는 신인드래프트 때 나름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잘 안풀려서 상실감이 컸어요. 몇년 전 자유계약선수가 됐을 때 나는 무조건 부산의 프렌차이즈 스타로 남고 싶고 통합 우승을 해서 내 유니폼을 사직체육관에 걸고 싶다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숙원을 풀어야 하는데 자꾸 그 꿈에서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팀을 옮긴다는 생각 자체는 해본 적이 없어요"
지난달 31일 KT에서 LG로 트레이드 된 농구 국가대표 슈터 조성민이 1일 오후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조성민과 창원 LG, 같은 곳을 바라본다무거운 마음을 안고 부산을 떠난 조성민은 1월31일 밤 11시가 넘어 이천 챔피언스파크에 도착했다. 대표팀 시절부터 가까웠던 김종규가 마중나와 있었다. 김진 LG 감독은 "네가 LG에 온 것은 행운이야"라는 말로 조성민을 따뜻하게 반겨줬다.
조성민은 "감독님의 말씀이 정말 고마웠어요"라며 한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오랫동안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다 단장으로 승진한 한상욱 LG 단장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조성민은 "단장으로 부임하셨다는 기사를 본 다음 경기장에서 만났는데 축하 인사를 건넸어요. 근데 단장님께서 '언제 농구 한번 같이 해야지?'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셨는데 말이 씨가 됐네요"라며 웃었다.
그때는 11월초였다. LG와 kt가 조성민의 트레이드를 두고 카드를 맞추기 시작한 시기는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조성민은 1일 오전 LG 연습복을 처음으로 입고 팀 훈련에 참여했다. 슛 연습을 할 때 주위에서 "오~", "우와 역시"라는 감탄사가 들려왔다.
조성민은 "같이 운동을 해본 LG 선수는 기승호, 김종규, 김시래 3명밖에 없어요. 다른 선수들은 저 형이 어떻게 운동하고 어떻게 슛을 쏘는지 궁금했던 것 같아요. 선수들이 저를 신기하게 보는 것 같았어요. 환호도 해주고. 그런 반응이 고마웠어요. 내게 믿음을 심어줬죠"라며 "kt에서는 그런 반응이 없었어요. 제가 너무 오래 뛰었고 선수들도 저를 잘 아니까 제가 신선하지 않았던거죠"라며 웃었다.
조성민은 LG 숙소에 합류한 것을 두고 "대표팀에 차출된 기분"이라고 했다. 그만큼 낯선 환경이지만 동료들의 환대에 마음이 한결 가볍다.
지난달 31일 KT에서 LG로 트레이드 된 농구 국가대표 슈터 조성민이 1일 오후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 체육관에서 슛팅 훈련 도중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조성민은 "LG는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필요로 하는 팀에 내가 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수들도 반겨주니까 저도 그들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겠다, 다시 한번 내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2일 현재 LG는 2016-2017시즌 전적 15승19패로 7위에 올라있다. 포스트시즌 진출의 마지노선인 6위 인천 전자랜드(17승17패)와의 승차는 2경기에 불과하다. 팀당 20경기 정도가 남은 정규리그에서 충분히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에 뛰어들 위치에 있다.
조성민은 "LG를 보면서 센터 제임스 메이스와 김종규의 플레이가 약간 뻑뻑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들어가서 수비수들을 더 밖으로 끌어내고 더 열심히 움직여 그들을 막는 수비수가 한번이라도 내게 오게 한다면 작은 차이지만 더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저도 2대2 공격을 할 수 있어 도움을 줄 수 있고 패스가 좋은 김시래와 뛰는 것도 기대됩니다. 지금은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할까, 그 생각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6강에 꼭 들어가야죠. 플레이오프에 올라가기만 한다면 단기전이니까 승부를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순위권 싸움을 하는 팀들은 우리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조성민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할 생각이 없다. 언젠가는 데뷔 시즌 이후 밟아보지 못한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올라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조성민은 "이제 우승을 해보고 싶습니다. LG도 해야 하구요. LG도 정규리그 우승을 했지만 통합 우승을 해본 적은 없어요. 저와 LG는 목표가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 마음 속 불씨를 다시 지피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KT에서 LG로 트레이드 된 농구 국가대표 슈터 조성민이 1일 오후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 체육관에서 슛팅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몸 상태? 걱정마세요"
조성민의 트레이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kt가 리빌딩을 위해 트레이드를 했다고 하지만 김영환은 조성민보다 한살밖에 어리지 않다. 2017년 1라운드 지명권은 1순위가 될지 8순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트레이드의 성패는 당장 드러나지 않는 법이지만 표면적으로는 LG가 이득을 취한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조성민의 몸 상태에 대한 의구심도 존재한다. 그는 최근 3시즌동안 계속 다쳤다. 2014-2015시즌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 차출 여파로 23경기에 결장했고 지난 시즌에는 발목을 다쳤다. 올시즌에도 무릎부상으로 13경기 출전에 그쳤다. 조성민이 최근 부상이 잦았던 반면 김영환은 부상이 거의 없었다. 그 차이만큼은 확실해보인다.
이같은 시선에 대해 조성민은 안타까워 했다. 서운함도 느낀다. 더불어 건강하게 뛰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조성민은 먼저 "2014-2015시즌은 kt 구단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제 책임을 통감해요. 시즌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뛸 때 이미 무릎이 안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멈췄어야 했나 싶기도 해요. 미련한 결정일 수도 있는데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값진 경험과 바꿨다 생각해요. 이후 건강하게 돌아왔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시즌에는 코트에서 땀에 미끄러져서 발목을 다쳤어요. 그건 운이 없었던거라 생각해요. 몸 상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올 때마다 아쉽죠. 저도 나이가 늘어가고 아픈 곳이 생기는 건 당연해요.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어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출전에 아무 무리가 없어요. 앞으로 제가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