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집값 하락 기대감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부동산경기가 급격히 냉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주택가격 급락과 이에 따른 담보가치 하락으로 금융시스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착륙 우려도 나오고 있다.
◇ 부동산경기 하강 국면 뚜렷올 들어 부동산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거래량'과 '가격'이 모두 확연하게 약세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주택거래량은 5만8539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6만2365건)보다 6.1% 감소했다. 한 달 전인 작년 12월(8만8601건)에 비해서는 33.9% 줄었다. 1월이 비수기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감소폭이 심상치 않다. 특히 서울(44.9%)과 수도권(42.6%)에서 전월 대비 감소폭이 컸다.
1월 거래량은 최근 5년(2012~2016년)의 1월 평균거래량(5만1324건)과 비교하면 여전히 14.1%가 많다.
문제는 감소폭이다. 작년 10월 10만9000건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뒤 11월 10만3000건, 12월 8만9000건에 이어 올 1월에는 5만8539건으로 갈수록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주택 매매가격의 경우 아직은 지역에 따라 등락이 엇갈리지만 11.3 대책의 영향이 큰 강남권 등을 중심으로 하락세가 뚜렷하다.
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 조사에 따르면 1월 전국 아파트 중위가격은 3억319만원으로 전월(3억337만원)보다 18만원 떨어졌다. 중위 매매가가 하락한 것은 지난 2월 이래 11개월 만에 처음이다.
중위가격은 아파트 매매 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앙에 위치하는 가격으로 고가주택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평균가격보다 대체로 낮다.
낙폭은 크지 않지만, 11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처럼 거래량이 줄고 가격도 약세로 반전된 데는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11.3부동산대책 외에 미국의 금리인상과 정부의 가계부채 안정화대책에 따른 시중금리 상승의 영향이 크다.
향후 부동산경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소비자들의 부동산심리도 빠르게 식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1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1월 주택가격전망CSI(소비자동향지수)는 전월보다 5포인트 하락한 92를 기록했다. 이 부문 조사가 시작된 2013년 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전국 2200 도시가구에 대한 설문조사로 산출되는 주택가격CSI는 기준치 100보다 낮을수록 1년 후 집값이 내릴 것이란 응답이 그만큼 더 많다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114를 정점으로 11월 107에 이어 12월에는 97을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100 아래로 떨어졌고 지난달에는 지수가 더 떨어졌다. 집값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황진환 기자)
◇ 경착륙 가능성은 없나이주열 한국은행총재는 지난달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경기가 최근 수년간 좋았던 것에 비하면 둔화되긴 하겠지만 건설경기나 집값이 급격한 조정을 받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또 현재의 부동산 시장을 버블(거품) 상황으로 보기도 어렵다고도 했다.
한은의 이 같이 판단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수요측면에서 주택가격 급락을 지지할 수 있는 잠재수요가 여전히 견조하다는 것이다. 청약 자격과 분양권 전매 제한 등을 강화한 11.3 부동산 대책 시행 이후에도 청약 경쟁률이 여전히 높다는 점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정부대책으로 투기성 청약이 상당부분 배제된 상황에서도 청약경쟁률이 작년 12월 7.48대1, 올 1월에는 6.17대1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만큼 수요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급측면에서도 비록 올해 말부터 내후년까지 입주물량이 크게 증가하지만 지난 수년간 예년에 비해 입주물량이 크게 적었던 점을 감안하면 공급과잉을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아파트 입주예정 물량은 36만8천 가구, 내년은 42만1000 가구다. 1999년 37만 가구 이후 가장 많은 물량 최근 16년 평균인 연 28만7000 가구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11~2015년까지 5년 평균 입주 물량은 22만 가구로 평균치(28만 가구)보다 6만 가구 이상 적다. 5년간 평소보다 30만 가구의 물량이 덜 공급됐다는 것이다. 올해와 내년에 늘어나는 입주물량이 예년 평균에 비해 21만 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공급과잉을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설령 집값이 극단적으로 떨어지더라도 여러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외환위기 때 하락폭인 13% 수준을 넘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외환위기 수준을 능가하는 집값 폭락 사태가 초래되지 않는 한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다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은 물론 우리 경제에 어떤 대형 충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금융시스템의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가계부채가 워낙 빠른 속도로 늘어난 데다 전반적인 경기부진 속에 유독 부동산 경기만 활황세를 유지한 만큼 자산버블(거품)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부동산심리가 급격히 냉각돼 집값이 급락하고, 워낙 많은 대내외 리스크들이 현실화된다면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워낙 파급력이 커고 다양한 대내외불확실성들이 안팎으로 혼재해 있는 상황이어서 어느 때보다 높은 경계감을 갖고 경제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며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집값 급락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부실 가능성에도 특히 유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