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창업소요기간은 4일이다(세계은행). 10년전만 해도 22일(세계 116위)이던 창업절차가 초고속으로 이뤄지며 벤처기업수는 사상최대(3만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창립 3주년을 넘기는 기업은 38%에 그친다. 민간투자를 받아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판로확보도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5일 '통계로 본 창업생태계 제2라운드' 보고서를 통해 "지난 10년간 초고속 창업절차, 진입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3만 벤처시대'가 열리는 등 창업 1라운드는 성공을 거뒀다"며 "하지만 벤처투자 생태계 미비, 판로난 등으로 벤처기업의 62%는 3년을 못버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창업장벽은 크게 낮아졌다. 세계은행의 국가별 기업환경 보고서에 따르면(’16년 기준), 창업 등록단계는 12단계에서 2단계로 축소됐고, 소요시간은 22일에서 4일로 줄었다. 스타트업 천국 미국의 5.6일도 앞질렀다.
우리나라 창업부문 경쟁력 순위도 116위(175개국 대상)에서 11위(190개국)까지 껑충 뛰었다. 이같은 창업지원 인프라에 힘입어 벤처기업 수는 사상최대치인 3만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창업 3주년을 넘기는 기업은 전체의 38%에 불과했다. 10곳중 6곳 이상의 벤처기업이 다음 라운드에 오르지 못한 채 좌절하는 셈이다. OECD 비교에서도 스웨덴(75%), 영국(59%), 미국(58%), 프랑스(54%), 독일(52%) 등에 크게 뒤처져 조사대상 26개국 중 25위를 기록했다.
2라운드 진입의 장벽은 '민간중심 벤처투자 생태계 미비', '판로난'이었다. 실제로 민간 벤처투자를 나타내는 '엔젤투자'규모는 '14년 기준 834억원으로 미국(25조원)의 0.3%에 그쳤는데 이에는 투자금 회수환경이 불리한 점이 주된 요인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미국 나스닥 상장에는 6.7년 걸리지만 한국 코스닥 상장에는 평균 13년이 걸린다"며 "법인사업자의 80% 이상이 10년 안에 문 닫는 상황에서 13년 후를 기대하며 자금을 대는 투자자를 찾기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벤처기업은 일반적으로 기술역량은 높지만 제조역량과 마케팅역량이 낮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기술상용화 가능성만으로 창업한 후 시장출시를 전후해 대기업 등에게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투자자금을 조기회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M&A를 통한 자금 회수비중이 유럽에선 51%에 달하지만 우리는 1.3%에 불과하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대한상의 자문위원)도 "국내 대기업이나 해외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통해 민간자본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성장에 필요한 자원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 보다 성공적인 벤처가 나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해외에서 본 한국벤처의 투자매력도 역시 낮은 수준이다. 전세계 '벤처시장 매력도'를 발표하는 스페인 나바다 경영대학원이 M&A시장, 금융시장 성숙도 등으로 벤처투자 매력도를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의 80% 수준에 불과했다.
전국적인 유통망이나 해외수출경험 부족도 문제다. 실제로 벤처기업의 65.6%가 국내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고 74.9%는 '해외에 수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벤처기업 실태조사)
송의영 서강대 교수(대한상의 자문위원)는 "기업가정신을 꽃피우려면 창업 자체만 촉진하는 방식보다 시장에서 끊임없이 가치를 창출해내는 기업들을 다수 육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판로개척뿐 아니라 IPO 규제 간소화, M&A 활성화 등 선진적인 민간 투자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대기업은 M&A를 통해 미래 신기술·신제품을 수혈받고, 벤처기업은 민간투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대기업-창업기업 상생의 혁신생태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