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예상했던대로 시상식은 영화 '라라랜드'와 '문라이트'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흑인 배우가 남녀조연상을 수상하며 인종 차별 논란을 불식시켰고,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상이 뒤바뀌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잊지 못할 순간들을 정리해봤다.
◇ 혹시나했지만 역시나…6관왕 오른 '라라랜드'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는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라라랜드'는 엠마 스톤의 여우주연상과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감독상을 포함, 촬영상, 미술상, 주제가상, 음악상 등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라라랜드'는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 '라라랜드'에서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이 만나 펼쳐 가는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잘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이기 때문에 주제가상과 음악상 등에는 이견이 없다는 평가다.
이미 '위플래쉬'로 아카데미에서 주목받은 바 있는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32세의 나이로 감독상을 수상해 역대 최연소 감독상의 주인이 됐다.
그간 다수의 작품에서 꾸준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엠마 스톤 역시 이번 영화로 스스로의 연기력과 열정을 검증받은 셈이다.
◇ 인종차별 논란 불식? 흑인 영화들의 반란'문라이트'의 수상은 그야말로 이변의 연속이었다.
통상 보수적으로 여겨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그간 흑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흑인 배우가 활약한 영화들이 빛을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흑인 배우들의 보이콧까지 벌어졌을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는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문라이트'가 '라라랜드'를 꺾고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작품상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실질적인 '최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문라이트'는 남우조연상, 각색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고 3관왕에 올랐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제작에 참여해 더욱 화제를 모은 '문라이트'는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해가면서 겪는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여우조연상에서도 반전 드라마는 계속됐다. 영화 '펜스'의 비올라 데이비스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은 것이다.
'펜스' 는 미국 내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룬 영화로, 1950년대 미국 피츠버그에서 잘 나가던 야구선수 트로이 맥슨(덴젤 워싱턴 분)이 청소부로 일하면서 백인사회의 벽에 좌절하고 흑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았다.
비올라 데이비스는 트로이 맥슨의 아내 역을 맡아 열연했다.
아카데미에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정부 들어 인종 차별적인 정책이 노골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오히려 더 가치있게 평가됐다는 것이다.
결국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화합의 메시지를 강조하고,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 '웃지 못할' 작품상 수상 번복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다시 없을 영화 같은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건은 최고상인 '작품상' 발표에서 일어났다.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워렌 비티에게 여우주연상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봉투가 잘못 전달됐고, 이에 '라라랜드'가 호명된 것. 애초에 '라라랜드'와 '문라이트'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됐기 때문에 납득 가능한 수상 결과였다.
'라라랜드'의 제작진과 배우들은 다같이 무대 위에 올라와 감격 어린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런데 수상 소감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워렌 비티가 다시 '문라이트'가 작품상이라며 수상을 번복했다.
'문라이트' 제작진과 배우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왔고, '라라랜드' 측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워렌 비티는 수상자 내용이 잘못 적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렸고, 지미 키엘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