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인 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2017 KMA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 시상식이 열렸다.
한대음은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소위 '주류 매체'나 인기 가늠의 제1기준이 되는 '음원차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음악의 가치를 발견해 내고 상을 통해 기념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하지만 한대음에는 다른 음악 시상식에 없는 것이 또 있다. 바로 틀에 박히지 않은 진솔한 수상소감이다. 이날 시상식에서도 관객들과 시청자들의 마음에 와서 박히는 많은 말들이 나왔다. 특히 '음악' 해서 밥벌이하는 뮤지션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소감이 많은 박수를 받았다.
◇ 트로피를 팔아 '돈'과 '명예'를 거머쥐다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한 이랑은 그 자리에서 트로피를 경매에 부쳐 50만원과 바꾸는 모습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사진=유튜브 캡처)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한 이랑은 이날 가장 파격적인 '수상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수상소감 몇 분 해도 되나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말문을 연 그는 "돈과 명예, 재미 3개 중 2가지 이상 충족하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 시상식은 2가지 이상 충족이 안 된다. 상을 받아서 명예는 충족된 것 같은데 재미는 없고… 재미있으세요?"라고 관객들에게 되물었다.
이어, "이걸 팔아야지 제가 돈을 좀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제가 트위터에도 썼는데 1월 수입이 42만원, 음원만이 아니라 전체 수입이 42만원이고 2월에는 조금 더 감사하게 96만원이더라. 어렵게 아티스트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상금을 주시면 감사하겠는데"라며 갑자기 수상 트로피를 경매에 부쳐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인테리어로서도 훌륭한 메탈릭한 디자인의 네모난 큐브형의 대중음악상 상패다. 제작하는 데 아마 단가가 얼마 들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가 월세가 50이고 월세를 내야 되기 때문에 50만원부터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집안에 메탈릭 디자인 소품으로 쓰실 수 있는 한국대중음악상 상패를 가져가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고, 이내 50만원을 제시한 관객과 현금 50만원과 트로피를 바꿨다.
이랑은 "감사하다. 명예와 돈을 얻어서 돌아가게 됐다. 재미는 저는 없고, 여러분들이… (재미있는 것 같다) 여러분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란다. 다들 잘 먹고 잘 사세요. 저는 잘 먹고 잘 살겠다"면서 돈을 흔들며 퇴장했다.
◇ "항상 우리 존재 화이팅"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을 수상한 키라라는 친구들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진=한대음 조재무 사진가)
[moves]란 앨범으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수상자가 된 키라라는 "감사하다. 진짜 타면 안 되거든요. 노트북 눌러 쿵 하면 짝이 찍히길래 그냥 그렇게 열심히, 알바하는 편의점에 앉아서 만든 걸로 이렇게 (상을) 타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저 혼자 열심히 한 앨범이라서 누구한테 감사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는 앨범이긴 한데 우선 노트북을 사 주신 엄마한테 감사드린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키라라는 "같이 전자음악하는 많은 동료 분들 감사하다. 한국에 전자음악 씬이 있는 게 너무 좋았다. 같이 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계속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소원이 하나 있는데 왠지 여기서 말하면 이뤄질 것 같아서 말하겠다. 친구들이 자살 안했으면 좋겠다. 자살 안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할 수 있는 거 있으면 열심히 하겠다. 항상 우리 존재 화이팅이다"고 말했다.
◇ 페미니즘 티 입고 등장한 9와 숫자들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을 수상한 9와 숫자들은 'peace my wish for the girl'이라고 쓰인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사진=9와 숫자들 페이스북)
'엘리스의 섬'으로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을 수상한 9와 숫자들은 'peace my wish for the girl'이라고 적힌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고 팔찌를 하고 등장했다.
9와 숫자들은 "저희는 고독과 연대에 대해서 노래를 했다. 저는 아직 모른다, 그런 거에 대해서. 근데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앞으로 많이 살펴볼 생각"이라며 "그래서 저 이런 티셔츠도 입고 오고 이런 팔찌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중음악상에서 더 많은 여성 뮤지션들과 여성 평론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또한 "맨날 저희가 이렇게 타 가서 죄송하다. 그동안 맨날 겸손한 거, 조용한 거만 했는데 (오늘은 수상을) 자랑하고 싶고,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며 "저희 재미, 저희 위안만을 위한 게 아니고 노래에 힘이 담겨서 노래 자체가 좋은 의미로 많이 들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음반"이라고 전했다.
◇ 아직 빛보지 못한 '음악인'들을 위한 따뜻한 한마디[의식의흐름]으로 최우수 모던록 음반 부문을 수상한 이상의날개는 "저희가 팬이 많이 없다. 그래서 한 분 한 분이 소중한 것 같다. 팬 여러분들께 가장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해 웃음을 유발하며 수상소감을 시작했다.
이상의날개는 "언젠가 한 번 무대에 오르게 되면 이 얘기를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다"며 2011년 한대음 시상식에 왔었던 경험을 말했다.
이상의날개는 "초대 받아 관람객으로 왔었다. 나는 음악해서 언제 이런 데에 서볼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며 "지금 이 자리에도 그때 2011년의 저와 같은 입장으로 많은 분들이 앉아있을 거라고 본다. 저도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는 응원을 전해드리고 싶었다"고 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음반 부문을 수상한 ABTB는 엔지니어들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한대음 조재무 사진가)
매년 수상자가 시선을 강탈하는 화려한 티아라를 받게 돼 한대음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최우수 록 음반 부문의 수상작은 ABTB의 [Attraction between two bodies]였다.
ABTB는 "가장 기쁜 것은 멤버들끼리의 조화였다. 내가 생각했던 여러가지가 멤버들이랑 같이 (하면서) 하나로 만들어진다는 그 엄청난 재미 때문에, 이렇게까지 돼서 너무너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음반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엔지니어들 고생 많이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약간 조명이 비쳐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소신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된 실리카겔은 "어떤, 평을 하나 보고 그 뒤로 저희들이 저희 음악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귀 썩는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귀 썩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한테도 이런 귀한 상을 주셨다. (저희의 수상이) 이 세상에 모든 귀 썩는 음악을 하는 분들한테 한 줄기 희망과 빛이 됐다"고 밝혔다.
또, "이 말을 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어제도 그렇고 귀를 이렇게 치장하고 다니면 저를 노려보는 아저씨 분들이 계시더라. 여러분, 눈치보지 마시고 마음껏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꾸미고 다니세요"라고 말해 박수를 이끌어냈다.
◇ "평범한 우리 이웃의 삶을 짓밟지 않으셨으면"강제 철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을 음악으로 위로한 음반 [젠트리피케이션]에 참여한 음악인들과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이 선정위원회 특별상을 받았다.
황경하 프로듀서는 "귀하고 특별한 상을, 특히 존경하는 음악가 윤민석 님과 같은 자리에 서서 받을 수 있어 영광"일며 "지치지 말고 계속계속 싸워 나가라는, 좋은 음악 만들라는 의미로 알겠다"고 말했다.
음반 [젠트리피케이션] 참여 음악인들은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선정위원회 특별상을 받았다. 황경하 프로듀서는 강제철거 반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한대음 조재무 사진가)
황 프로듀서는 "이 음반을 만들면서 되게 제가 되게 감정이 무딘 편인데 되게 많이 울었다. 너무나 많은 우리 이웃들이 어처구니없고 비참하고 불행한 이유로 쫓겨났다"고 전했다.
그는 리쌍의 우장창창 사태를 언급하며 "한 가장이 4인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6년 동안 열심히 일궜던 삶의 터전이다. 함부로 빼앗지 마십시오. 돌려주십시오. 평범한 우리 이웃의 삶을 짓밟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헌법 제1조'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작곡가로 유명한 윤민석은 "아마 이 상을 저에게 주시는 분들도 특별한 일이었을 것 같고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상을 받는 것도 굉장히 특별한 일이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어쩌다 보니까 올해가 민중가요라는 걸 만든지 30년이 되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이러고 상을 들고 있으려니까… (지금까지 노래를 만들고 나서) 받아본 거라곤 구속영장이나 출두요구서, 문화면에 안나고 사회면에만 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대중음악상을 들고 있으니까 정말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 때문에 참 많이 고생하신 어머님 아버님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학살로 별이 된 우리 아이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정말 고맙다"고 덧붙였다.
◇ 놓칠 수 없는 '시상소감'자신의 현실과 음악관을 거리낌 없이 펼치고 세태를 따끔하게 꼬집는 수상자들의 특별한 소감만큼이나, 시상자들 역시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발언으로 한대음을 빛냈다.
올해로 3년째 한대음에 참석하고 있는 권나무는 "다들 어렵고 어두운 시기에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주시고 발견해주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한대음에 감사를 표했다.
메탈&하드코어 음반 시상자로 나선 매써드는 메탈 장르를 소개하며 "요즘 같이 어려운 시국에 가장 듣기 좋은 장르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최우수 모던록 부문을 시상하러 온 칵스는 "모던록 부문은 가장 많은 음반이 발매되는 장르라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다. 모던록뿐 아니라 후보에 오르지 않았어도 멋진 음악이 많으니까 한국대중음악상과 한국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해 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최우수 록 음반 부문을 시상한 더 모노톤즈는 "지난 한 해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가만히 있기만 해도 혼이 정말 비정상화되는 시간이 아니었나"라며 "혼돈과 혼란의 시간 속에서도 훌륭한 뮤직을 만들어주신 뮤지션 연주자 관계자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진행을 맡은 밴드 소란의 고영배 (사진=한대음 조재무 사진가)
매끄러운 진행으로 호평 받은 밴드 소란의 고영배는 "저는 이 자리에 와 본 것도 처음이다. 저는 소란이라는 밴드를 하고 있거든요. (한국대중음악상에) 관심 없이 행복하고 즐겁게 잘 살고 있었는데 지난주 쯤에 연락이 와서 너무 설레더라. 그런데 사회자라고 해 가지고…"라고 해 폭소를 유발했다.
그는 "일단 지금은 주어진 일(시상식 진행)을 열심히 하고 있긴 한데 언젠가 좋은 음악 만들어서 이 자리에서 축하받는 날까지 열심히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는 노래 부문이랑 음반 부문을 한 번에 다 가져간 팀이 없었다. 그만큼 좋은 음악 좋은 노래 좋은 음반들이 나왔던 게 아닐까. (수상한) 후보들의 음악들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시상식을 통해서 낯선 만남을 통해서 그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그 해당 장르까지 관심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