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경찰서 로비에 설치된 국정소식 게시판. 국가의 정치와 관련한 내용 대신 대통령의 행사 사진이 게시돼 있다.
'국정소식'. 8일 서울 방배경찰서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눈에 잘 뜨이는 오른 쪽 벽면에는 이처럼 거창한 이름이 달린 게시판이 민원인들을 맞는다. 내용은 사진 여섯 장으로 단출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앞에 일렬로 서 있는 장관들을 바라보고 있거나 거대한 태극기 앞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등이다. 사진 설명이라며 써 있는 것도 대통령이 무슨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는 게 전부다. '국정소식'이라지만 단어 뜻 그대로 국가 정치에 대한 소식이나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전형적인 '땡전뉴스'식 게시판 운영이다. 땡전뉴스는 5공화국 시절, 9시 정각이 땡 하고 울린 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활동사를 가장 먼저 보도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대통령이 행사 참석, 거수 경례 하는 게 국정(國政)?문제는 이런 식의 게시판 운영이 일부 경찰서를 제외하고 전국 경찰서 수준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탄핵 심판을 앞두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의 사진으로 게시판 내용을 바꾼 경찰서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행정수반의 행사가 곧 국정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로운 경찰서는 거의 없다.
국정에 대한 진짜 정보가 없으니 경찰서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아예 무관심이거나 이상하다는 반응이다. 시간을 두고 지켜봐도, 민원인들 중 게시판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오규진(32)씨는 "국정이라는 본질에 충실한 사진 다른 것도 많을 텐데 대통령과 관련된 사진만 보여준다면, 그만큼 국가 권력에 잘 충성하고 있다는 것을 전시하는 효과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모(20)씨는 "권력층한테 너무 보여주기식으로 해서 촌스럽다"고 지적했다. 김모(21)씨는 "의도가 뻔하지 않냐"고 냉소했다.
경찰청 로비에 설치된 국정 게시판. 황교안 대통령 대행의 행사 사진이 걸려 있다.
◇ 경찰은 땡전뉴스 시절 관행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대로…"게시판의 운영 주체인 경찰서는 국정소식 게시판의 취지나 운영 매뉴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다. 언제부터, 어떤 기준에 의해선지 일선 서에부터 본청 단위까지 아는 곳은 없었다.
관악서 관계자는 "따로 규정은 없고 과거부터 해오던 관행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 역시 "관련 부처에서 대통령 사진 풀을 만들면 우리가 적당한 것을 뽑아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정 소식 게시판은 땡전뉴스와 마찬가지로 군부독재 시절부터 시작돼 30년 넘게 이어져 왔다. 퇴직을 앞둔 경찰들은 게시판의 변함 없는 모습에 대해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36년 동안 경찰 생활을 한 김모(60)씨는 "내가 자신이 경찰에 들어왔을 때부터 저런 형식이었는데 아직까지 변화가 없다"며 "80년대 '땡전뉴스'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 권위주의적, 형식주의적 행정의 일면…게시판 본연 취지 살려야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경찰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대해 박천오 명지대 행정대학원 원장은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니 지시에 순종하겠다는 권위주의적 문화의 일면”이라면서 "내용적면에서도 비어있고, 의전사진이나 포장에만 더 신경 쓰는 것으로 봐 행정의 형식주의적인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게시판의 원래 취지에 맡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국대 경찰 행정학과 이윤호 교수는 "경찰기관에서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국정소식들을 알릴 필요가 없다"며 "안전이나 범죄 예방 법 등 좀 더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게시판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