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파면 당하고 이제 '자연인 신분'이 됐다.1987년 개헌이후 도입된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최초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 됐다.
한국 민주주의는 헌법과 법률을 어기고 국민에게 신임을 배척당한 대통령은 설사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더라도 국민의 뜻에 따라 물러나야 한다는 중대한 선례를 만들었다.
한국 민주주의 획기적 진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며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중대하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그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을 설립하고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 KD코퍼레이션 지원으로 '비선' 최순실씨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헌재는 "이같은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가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국회와 언론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했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은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을 통한 국정농단 사실이 들통나자 안종범 전 청 와대 수석을 통해 전경련이 두 재단을 만든 것으로 하고, 관련자 진술도 입을 맞추라는 취지로 지시를 전달한 바 있다.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헤 대통령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선고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헌재는 결정문에서 박 전대통령이 수준이하의 행동을 하며 현행법을 우롱한다는 취지로 꾸짖기도 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규명에 최대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고 적시했다.
굳이 탄핵 결정문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수사와 압수수색 거부까지 헌재가 적시한 것은 '일국의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법치주의를 존중하지 않은채 수준 이하의 행동을 했다는 꾸지람으로 해석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특검 조사를 안받은 사실까지 헌재가 쓴 것은 큰 틀에서 헌법 수호의지가 없다는 것이지만,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될 행동을 했다는 취지의 '선생님식' 강력한 질책"이라고 해석했다.
◇ "최악의 인물이 권력 장악해도 마음껏 나쁜 짓 못한다"헌재 심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 범위내에서 합법적 수단으로 통치 해야 하는데도 박 전 대통령의 행태는 이런 범위를 넘어서 파면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다.
안창호 헌재 재판관도 '보충의견'에서 "이번 파문이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폐습'이라며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이 권한 남용과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을 낳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촛불시위로 대변되는 국민의 심판을 이미 받은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이 더이상 헌정질서를 수호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지도력 부재의 국정혼란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때 막강한 권한을 휘둘러 '제왕적 대통령' 행세을 해 온 현직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실상 쫓겨난 사실은 극적일 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안창호 헌법재판관. (사진=박종민 기자)
민주주의 작동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작동함으로써 아무리 사악한 인물이 국가권력을 장악해도 '악'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선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의 강압속에서 직선에 의한 5년 단임제를 완성하는 등 끊임없는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을 등한시 하는 '제왕적 대통령' 문화로 인해 이른바 '보다 차원높은 민주주의'로 전환하는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유시민 작가는 "최선의 인물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게 보장하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더라도 악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국가란 무엇인가)
민주주의 제도 목적과 강점은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도 나쁜 짓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국민에게 심판을 받는 만큼 국회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한국의 중요 지도자들에게도 엄중한 명령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