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최초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그 동안 추진해 온 각종 ICT(정보통신기술) 사업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박근혜 정부들어 새로 조직된 미래창조과학부는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창업 거점으로 만들겠다던 전국 18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향후 5년간 4050억 원을 투자하겠다던 VR(가상현실) 산업 분야와 핀테크, 빅데이터 사업 등의 추진도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차기 정권에서 동력을 이어갈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탄핵 이후 곧바로 '대선 정국'에 돌입하면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등을 비롯한 방송·통신 관련 법안의 국회처리는 또다시 밀려날 전망이다.
◇ '풍전등화' 미래부 개편 논의 급물살…'조기 대선' 朴 지우기 돌입하나박 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창조경제의 주무부처인 미래부는 신설 4년 만에 해체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조기 대선 전망이 나올때부터 대선 주자들은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가 통합·신설된 미래부를 원래의 목적과 기능에 맞게 쪼개고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집권시 미래부를 과학기술정책을 전담하는 '과학기술부'와 ICT를 주도하는 '정보혁신부'로 개편한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성남시장 측은 부총리급 과학기술부 신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래부는 우선 대선이 치러질 5월까지 국정운영에 공백이 없도록 매진할 방침이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탄핵 인용 직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장관 주재 간부회의를 열고 공직 기강 확립을 재차 추문하며 흔들림 없이 업무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12일에는 최재유 제2차관이 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최 장관은 미래부 조직개편에 대해 "정부가 출범할때마다 매번 부처를 붙였다 흩었다 했는데 효과가 있었는지 분석해야 한다"며 "지금은 예전과 달라 부처간 ‘칸막이’이가 있어서는 안된다"면서 미래부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미래부 한 관계자도 "금년도 업무계획은 앞서 발표한 것처럼 예산을 확보해 추진하는 정책들을 일정에 따라 예고된 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게편 논란에 일축했다.
충북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구본무 LG 회장(앞줄 맨 왼쪽)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함께 충북산 약용작물이 첨가된 화장품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 전국 18개 창조경제혁신센터 '폐지되나'…스타트업 부정적 인식 확산 우려현 정부에서 집중 지원을 받아온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그동안 추진해온 사업에 차질이 생길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최근엔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대전, 전북, 부산, 인천 등 혁신센터가 기관장 공모난을 겪기도 했다. 대전센터는 기존 센터장을 재선임했고 부산센터는 단독 응모한 기존 센터장을 유임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관계자는 "사업 여건이 매우 나빠졌고 탄핵 이후 지원이 줄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면서 "스타트업 육성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가 굉장히 높아진 만큼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이름이 유지되지는 못하더라도 정권과 무관하게 스타트업 육성 기능은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창업·보육 지원을 받아 온 스타트업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문제가 된 '창조경제'를 스타트업과 연결해 보는 시선이 많아 혁신적 서비스를 하는 기업들까지 피해를 볼까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사진=자료사진)
◇ VR 등 朴 추진해오던 4차 혁명·미래먹거리 사업 '깜깜'정부가 미래먹거리 사업 가운데 하나로 꼽으면서 향후 5년간 405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VR 사업마저도 불안한 상태다. 앞서 VR 사업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다고 지목되면서 육성 사업 예산 81억원이 이미 삭감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바통을 넘겨받는 차기 정권이 수천억원이 투자된 미래 사업의 동력을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VR육성 정책에 참여해 온 스타트업들 또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규제 완화와 함께 적극적으로 투자, 육성하겠다는 핀테크 기술 정책 또한 탄핵으로 규제 완화가 더뎌지면서 당분간 교착 상태에 빠지거나 무기한 연기, 혹은 중단될 우려도 점쳐지고 있다.
방송·통신업계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선거철마다 가계통신비 인하는 단골 공약으로 나오는데다, 단통법도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만큼 통신비 인하 압박이 그 어느때보다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지난해 연말부터 후순위로 밀려난 방송 통신 관련 법안 처리는 대통령 탄해 인용으로 또다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개정안(단통법)을 비롯한 요금인가제 및 분리공시제 등 사업자와 소비자가 모두 얽힌 방송 통신 과학 분야 법안 109이 상정돼 있다.
그만큼 핵심 쟁점에 대해 신속하면서도 철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 정국 상황에 비춰 논의 속도는 어쩔수 없이 더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탄핵 인용으로 대선 국면이 촉박하게 돌아가고 여야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또다시 핵심 쟁점은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면서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업계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통사와 케이블TV 업체의 인수합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합방송법도 초미의 관심사다. KT를 제외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케이블TV 사업자 인수가 가능한 상태다.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관련 제도 개선안 등도 계류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ICT 현안들은 최순실 게이트로 밀려나면서 방치된 상태나 다름없다"며 "경쟁국들이 4차 산업혁명시대 패러다임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