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울산 경부고속도로에서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참사가 빚어졌다. 달리던 관광버스가 불에 타 중국 여행을 마치고 울산으로 돌아오던 퇴직자 부부 등 10여 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것. '울산 관광버스 화재 참사'로 불리는 이 사고는 전세버스 업계에 만연한 부조리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5개월여가 지난 지금도 안전은 뒷전이고, 버스운전기사들의 처우는 믿지 못할 만큼 열악하다. CBS노컷뉴스는 참사 이후에도 '여전한' 전세버스 업계를 다시한번 파헤쳐본다. [편집자주]
불에 탄 관광버스의 모습. (사진=자료사진)
전세버스 업계에 퍼져있는 비상식적 관행은 예상보다 훨씬 뿌리 깊고 견고하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모든 부조리를 근절할 것 같은 ‘호들갑스런 분위기’가 조성되지만 업체들은 그때만 잘 넘기면 별 탈 없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
파리 목숨과 다름없는 운전기사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침묵할 수밖에 없고,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내놓는 땜질식 처방은 구조적 문제를 손보는데 한계가 있다.
◇관광버스업계는 '부조리 백화점'운전기사들이 쏟아내는 전세버스 업계의 부조리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회사의 갑질 횡포와 부당한 임금체계, 운전기사 자질 문제 등 개선해야 할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관광버스 운전기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버스업체는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기사들에게 일괄사표를 요구한다. 기사들이 사표를 내면 재입사시키는 방법으로 퇴직금을 줄이려는 것이다.
또 기사가 배차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40여 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당연히 기사들은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신호 위반과 과속을 일삼을 수밖에 없다.
현금으로 지급하던 수당 형식의 돈 가운데 일부를 기본급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맞추는 업체도 있다는 것이 기사들의 설명이다.
차량 대수에 비해 차고지의 주차 면이 부족하자 운전기사들에게 밤샘주차를 유도하고, 불법주차에 따른 범칙금이 부과되면 이 또한 기사들에게 전가한다. 교통사고가 나면 차량 정비 비용 또한 기사들이 부담해야 한다.
기사가 모자라는 행락철에는 80세가 넘은 고령자를 일용직으로 고용하고, 음주운전 경력자도 거리낌 없이 운행에 나서도록 한다.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버스를 운행하고, 비가 새는 버스를 초등학생들의 현장학습에 동원하기도 한다.
전직 운전기사 A 씨는 "하루 2~3시간씩 자면서 일을 하면 한달에 200만 원 정도를 벌게 된다"며 "기사들은 이 돈을 벌지 못할까봐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도 침묵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운전기사 B 씨는 "간단한 부품을 교체하는데 한달이 걸릴 정도로 차량 정비에 손을 놓고 있다"며 "부실한 차량 관리 때문에 언제나 불안감을 안고 운전을 한다"고 말했다.
◇“현장 목소리 정책에 반영해야”관광버스 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일선 운전기사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참사 이후 일부 운전기사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동진관광 노조는 기사들의 처우 개선과 함께 채용 기준 강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해고가 언제든지 가능한 촉탁제를 철폐하고, 고용 불안문제를 해소하는 등 부당한 근로계약조건이 개선되면 운전기사들의 안전 인식 또한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부적합한 운전기사가 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운전자의 연령과 범죄사실, 운행경력사항 등 각종 정보를 공개하는 기사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후차량 관리를 위해 차량 연식과 안전점검 현황 등을 버스 내부에 기재하는 방안 또한 주문하고 있다.
오광호 동진관광 노조위원장은 "버스운전기사 대부분이 촉탁직으로 고용돼 최저시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무리한 운행이 불가피하다"며 "현장에서 구조적 문제를 몸으로 느끼고 있는 운전기사들의 지적을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사고가 날 때마다 땜질식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게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운전기사들의 안전교육에 대한 개선 요구도 높다. 지난해 대형사고를 겪은 이후에도 운전기사 안전교육은 관광버스 업체가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때문에 운전기사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울산시는 형식적인 안전교육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늦었지만 교육 개선에 나섰다.
울산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관련 법에 따라 관광버스 업체가 자체적으로 기사 안전교육을 진행했다"며 "올해부터 기사들이 단체로 교통안전공단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