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은 해방이 된 뒤에야 서울에서 윤동주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 그리고 윤동주가 자신에게 건네주고 간 시집 원고를 떠올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을 붙였던 그 원고였다. 정병욱은 고향의 어머니를 찾았다. 해방 후 어수선한 서울을 떠나 오랜만에 내려온 귀향길이었다. …… 정병욱은 집에 들어서자 바로 어머니에게 전에 맡겼던 책과 노트를 어디에 두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잘 간수했으니 걱정 말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일본 순사의 눈을 피해 양조장 큰 독 안에 감추었다가 해방이 되면서 장롱 속에 보관했던 책과 노트를 꺼내왔다. 명주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싸 놓은 책과 노트를 받아 든 정병욱은 그 가운데 끼어 있는 윤동주의 시 원고가 너무도 반가웠다.
- 23~24쪽, 「윤동주의 숨겨진 시 노트」 중에서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근현대 문학·미술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조명한 '권영민의 문학 콘서트'를 펴냇다.
저자는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했던 작품 속 뒷이야기들을 통해 삶과 문학의 긴밀한 연결고리들을 풀어냈다.
윤동주의 원고 노트를 소중히 간직한 후배 덕분에 윤동주가 차가운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눈감은 후에나마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일본의 한국어 말살 정책으로 발표하지 못한 시들을 '청록집'으로 펴내면서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던 박목월과 조지훈의 첫 만남이 담겨 있다.
친우의 천재적 예술성과 고뇌를 이해하고 이를 시와 그림으로 탄생시킨 이상과 구본웅의 우정, 최소한의 삶을 꾸려가되 최대한의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예술의 역할을 강조했던 한용운의 기개 등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직접적 체험이 곳곳에 녹아 있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가을비 내리던 날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정지용의 '백록담' 초판본을 구한 이야기, 이상의 소설 「실화」 속 카페 NOVA를 찾아 신주쿠를 헤맨 이야기 등이 읽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상상을 선물한다.
책 속으로
이상은 구본웅의 예술적 정진을 축하하면서 그 집념의 인간 승리를 찬탄한다. 그리고 구본웅을 모델로, 화가 구본웅의 불굴의 초상을 시로 적게 된다. 꼽추라는 세인의 멸시, 자기 스스로 느껴야 하는 육체의 곤고함을 구본웅은 당당히 이겨 낸 것이다. 그리고 자기 신념대로 그가 꿈꾸던 캔버스를 화가라는 이름으로 지배하게 된 것이 아닌가? 이상은 구본웅의 빛나는 개인적 성취를 ‘곤봉의 변신, 하나의 산호 나무 되기’라고 노래한다. 그것이 바로 「차8씨의 출발」이라는 일본어 시이다. 나는 앞에서 「차8씨의 출발」의 ‘且8’이라는 글자를 ‘구(具)’라는 한자의 ‘파자’ 형태로 읽었지만, 이 기호적 형상 자체만을 놓고 볼 때는 구본웅의 외양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본웅이 늘 쓰고 다녔던 높은 중산모(且)와 꼽추의 기형적인 형상(8)을 합쳐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기호놀이는 이상과 구본웅이 ‘서로 농하는 사이’라고 말할 정도로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61~62쪽, 「구본웅이 그린 친구의 초상」 중에서
이중섭의 'K씨네 가족'이라는 그림은 대구에서 구상 시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린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5년 당시 구상이 아내와 함께 어린 남매를 거느리고 살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들을 K씨가 붙잡고 있고 그 뒤로 부인과 딸아이가 이 모습을 지켜본다. 화폭 위에 그려진 단란한 가족의 모습 가운데 자전거 위의 아이가 고개를 젖히고 좋아하는 표정을 놓치지 않은 점이 흥미롭다. …… 이중섭이 구상 시인의 집에서 본 이 단란한 가족의 모습 속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자기 자신을 굳이 크게 그려 넣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당시 이중섭이 처해 있던 상황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제주도 서귀포의 피난지에서 아내와 두 아들이 일본으로 떠난 후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었다. 이중섭이 구상 시인의 가족들을 통해 확인한 것은 그네들의 행복하고 단란한 일상이지만, 그러한 행복한 순간을 가지지 못하고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자신의 외로움이 더 컸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99~100쪽, 「이중섭의 달과 까마귀」 중에서
조지훈이 경주로 내려오던 날 아침부터 하늘에서는 봄비가 분분하게 흩뿌렸다. 목월은 지훈을 만난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전날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일찌감치 건천역으로 나가 지훈을 기다렸다.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금융조합 서기로 일하고 있던 그는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시를 쓴댔자 그것을 발표할 길이 없었다. 모든 잡지와 신문이 폐간당한 터라서 그는 중앙문단에서 제대로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채 시골 생활에 빠져 있었다. …… 그날 해 질 무렵 건천역에 기차가 들어섰다. 박목월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지훈이 자신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전날 밤 한지에 ‘박목월’이라고 자기 이름을 써 두었다. 그리고 역으로 나가면서 그 종이를 챙겼다. 그는 역 앞에서 자기 이름을 쓴 한지를 깃대처럼 쳐들고는 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큰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시골 아낙네 서넛과 촌로 두엇이 플랫폼에 내렸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지훈이 천천히 기차에서 내려섰다. 목월은 자신이 들고 서 있던 깃대를 흔들 필요도 없이 단박에 시인 조지훈을 알아챘다.
-38~39쪽, 「조지훈과 박목월의 나그네」 중에서
권영민 지음 | 해냄출판사 | 325쪽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