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황진환 기자)
다국적 기업인 옥시는 오직 한국에서만 해당 가습기 살균제를 팔았다. 왜 옥시는 유해성분이 들어있는 가습기 살균제를 팔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한국을 선택했을까?
미국 공정위인 미 연방거래위원회는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해 폭스바겐을 상대로 1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7조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우리 공정위나 환경부는 힘도 못쓰고 있다. 왜 이렇게 사정이 다를까?
건설업체들이 대형국책건설공사 입찰담합을 해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고도 담합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불법이익 대비 과징금은 '새발의 피'…어겨도 남는 장사 건설공사 입찰담합은 건설업계의 고질적 병폐다. 고속철도·4대강 사업·가스저장시설 등 대형 국책 공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이다.
대형 국책사업인 한국가스공사의 강원 삼척과 경남 통영, 경기 평택의 LNG 저장탱크 건설공사에서 조직적인 담합을 한 13개 대형 건설업체들이 4월 26일 3516억 원의 과징금 부과와 함께 검찰에 고발조치 됐다.
이들 13개 건설사의 입찰 담합 규모는 3조 2269억 원으로 최대 과징금이 부과됐던 2014년 호남고속철도 공사 입찰 담합의 과징금 4355억 원의 뒤를 이었다.
2013년 4대강 공사 입찰 담합도 11개 건설사 법인과 전·현직 임원 22명이 기소됐지만 과징금 최종 부과율은 관련 매출액의 3.55%로 1155억 원에 그쳤다.
공정거래위원회의 4대강 담합조사 결과에서 이들 건설사들이 4대강 사업 담합으로 얻은 부당 이득금은 1조 6635억 원에 달했다.
담합 입찰의 경우 대부분 예정가의 90% 이상 가격으로 낙찰된다. 경쟁 입찰에서 저가 경쟁을 할 경우 70%대 낙찰이 많은 점과 비교하면 20% 이상 이득을 보는 것이다.
LNG 저장탱크 공사도 담합전에 56%~79%인 낙찰률이 담합기간에는 78%~97%까지 높아졌고 답합제재 뒤에는 68%까지 떨어졌다.
건설사로서는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내도 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헐씬 더 큰 셈이어서 담합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나중에 들켜서 배상을 하더라도 훨씬 남는 장사가 되는 지금 같은 체제에서 업체들은 이익을 포기할수 없다. 제2, 제3의 담합이, 제2, 제3의 옥시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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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부분적 도입됐지만… 이같은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손해본 만큼 보상해주는 대륙법계 실손해 배상제도를 시행중인 우리나라에서도 부분적이지만 영미법계의 제도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하고 있다.
법리적 요청보다는 대기업의 폐해나 기업 양극화 해소, 경제민주화를 높이자는 정책적, 정치적 요구에서 비롯됐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단순한 손해배상 차원이 아닌 원래의 손해액을 뛰어넘는 막대한 불이익을 가해자에게 배상케 하는 제도로서, 징벌적인 측면, 위법행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다시 재발되지 않게하는 예방의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2011년 '하도급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하도급업체에 대한 기술탈취행위에 대한 3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됐고, 2013년에는 부당단가 인하, 부당발주 취소, 부당반품 등으로 확대됐다.
지난해 3월에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신용정보회사 등 신용정보 이용자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개인신용정보를 유출해 피해를 입힐 경우 3배 이하의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다.
올해 4월에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악의적인 영업비밀 침해 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도급 분야에서 가장 먼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 이유도 대기업 중심의 경제발전과 경제력 집중에 따른 부작용에서 중소기업이나 하도급업체를 보호하기위한 정책적 필요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 3배보상 시행 전무…있으나 마나한 제도 전락하지만 2011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하도급법 개정뒤 지금까지 법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 있으나 마나한 제도가 된것이다
다만 지난 3월부터 창원지방법원에서 모 업체가 CJ대한통운으로부터 부당하게 위탁계약을 취소당해 약 12억 6000만 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3배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징벌적 손해배상 실적이 미미한 것은 하도급 업체나 중소기업이 원청업체나 대기업의 거래 중단 같은 보복을 두려워해 신고를 꺼리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지난해 2월부터 전국 5개 지역 간담회를 통해 각종 분야의 중소기업들의 애로를 수렴한 결과 가장 심각한 문제로 공통적으로 제기했던 사항이 "보복을 우려해 신고나 제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대기업이나 원청기업과 계속 거래를 해야하고 신고나 손해배상소송을 할 경우 동종 업계에서 사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3배 보상제도는 실효성이 없다.
이에대해 법무법인 세광의 오영중 변호사는 "신고나 손해배상 소송 제기로 입는 불이익이 이익보다 더 크다"면서 "하도급 분야에서 3배 배상제도는 이러한 불이익을 감수하기에는 실효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10배 정도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물리도록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업이 담합행위로 얻는 이익에 비해 과징금의 액수가 너무 적고, 그나마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통해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는 경우도 늘고 있어 담합으로 얻는 기대이익이 적발로 인해 입을 기대손실보다 확연히 크다“고 강조했다.
오 변호사는 "담합행위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기대손실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완 교수는 '하도급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 마당에 이 법률보다 훨씬 다양한 중대한 위법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독점규제법에는 아직 규정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며 독점규제법에도 마땅히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전문가들도 법학자나 변호사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94%가 현재 손해배상제도가 배상액 자체가 적고 절차가 복잡해서 사실상 불법행위가 생기는 것을 방치하고 있고 실제 손해를 메울 만큼 충분하게 배상이 안 된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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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벌적 손배제 비웃는 다국적 기업들…'한국제도는 허당'하도급, 입찰담합 등 공정거래분야는 물론 제조, 환경, 유통, 소비자 등 사회 전반적으로 실효성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독점이나 불법 행위로 인한 이득이 손실보다 커 불법행위가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다국적 기업인 옥시가 오직 한국에서만 유해성분이 들어있는 가습기 살균제를 팔수 있는 것도, 폭스바겐이 허술한 리콜계획서를 내고 정부를 우롱하는 것도, 애플이나 퀄컴, 오라클 등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이나 유럽,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 유독 자신만만한 것도 우리 법체계나 징벌 시스템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외대 법학 대학원 최승필 교수는 최근 발간된 '법의지도'라는 책에서 폭스바겐의 예를 들며 180억달러(약 21조 원)라는 천문학적 벌금. 아무리 징벌적 손해배상이라지만 도대체 미국에서는 어떻게 이런 숫자가 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사전 규제가 많으면 사후 과징금이 적고, 규제가 거의 없으면 반대로 잘못했을 경우 무한책임을 지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규제가 많은 대신 징벌이 약하다고 밝힌다.
최 교수는 '민간의 책임을 강화해 국가 개입 없이도 피해자에게 충분히 보상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사전에 강하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결국은 선택의 문제'라고 밝힌다.
사전에 강하게 통제하지만 자꾸 빠져 나가는 틈들이 생기고, 보상도 미흡하고 손해는 소비자나 국민이 보고, 세세한 규제도 별로 효과를 못보는 것같은 이 시점에서 실효성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확산해 운영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