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에서 열린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구본찬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구본찬이 시상대 위에서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남자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남자양궁 대표 구본찬(왼쪽부터) 김우진 이승윤이 6일 오후(현지시각)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펼쳐들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양궁이 올림픽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었다. 올림픽 사상 첫 남녀 단체, 남녀 개인 전 종목 석권. 이 정도면 네티즌들이 농담 삼아 하는 ‘하느님이 보우(BOW, 양궁)하사 우리나라만 쎄’라는 말이 유머로 들리지 않는다.
한국 양궁 대표팀은 13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우승한 구본찬(23·현대제철)을 끝으로, 한국 양궁 사상 최초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남자 단체전을 시작으로 여자 단체전, 이어 여자 개인 장혜진(29·LH)과 남자 개인 구본찬까지.
어떤 이들은 한국 양궁이 강한 비결을, 젓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에 손의 감각이 남다르다느니, 신궁(神宮) 주몽의 후예라 양궁에 강한 유전자가 있다느니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공정한 선발 시스템과 체계적인 교육 그리고 아낌없는 투자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물론 개개인의 강한 실력과 현장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한두 명의 천재가 반짝 좋은 결과를 낼 수는 있어도 ‘양궁 강국, 세계 최정상’이라는 30여 년 전통의 브랜드를 만들 수는 없다.
한국 양궁의 대표선수 선발 시스템은 공정하고 투명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학연·지연·혈연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전관예우 같은 낙하산도 없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스타 선수라고 주어지는 어드밴티지가 일체 없어서다.
양궁은 국가대표 선발전을 매년 새로 치른다. 전년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에게 약간의 가산점이 주어질 뿐, 나머지는 동일 출발선에서 경쟁을 시작한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이 세계 대회보다 더 어렵다는 선수들의 얘기는 허풍이 절대 아니다.
여자양궁 장혜진(왼쪽부터), 기보배, 최미선, 양찬훈 감독이 7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전에서 러시아에 승리해 금메달을 확정짓고 환호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여자양궁 장혜진이 11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국가대표 감독이나 코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능력만 본다. 선발 기준은 자신이 지도해 국가대표로 배출한 선수 숫자이다. 스타 출신이라도 대표 선수를 배출하지 못한 자에게는 국가대표 지도자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월등한 스타 한 명을 만들어내기 위한 사교육도 없다. 대한양궁협회는 2013년에 '한국양궁 저변확대 및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웠다. 초등학교 유소년 대표부터 국가대표까지 연계되는 시스템을 구축, 과거부터 쌓인 노하우와 각종 훈련 방법들을 일원화해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린다.
수백억 원에 달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전폭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1985년 정몽구 회장이 협회장이 되면서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번에는 대회 1년 전부터 컨디션 유지를 위한 뇌파 검사와 태릉선수촌 내 현지 경기장을 실사로 재연해 적응 훈련을 도왔다. 활을 고르기 위한 슈팅머신과 비파괴 검사를 비롯해 3D 프린터를 활용한 맞춤형 그립도 제작해 제공했다. 항공기 비즈니스석과 한식 조리사 배치, 경기장 근처에 휴게실과 의무실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전폭적인 지원 덕이다.
한국 양궁이 이룬 이 결과는 하느님의 도움도, 젓가락도, 주몽의 후예여서도 아니다. 시스템과 교육, 투자가 배경이다. 이것이 대회 방식이 아무리 바뀌어도 한국이 양궁 강국의 위엄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오죽하면 다른 종목, 심지어 사회 전반 시스템이 양궁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