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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배드민턴 살린 눈물·웃음의 '밀당 워맨스'

스포츠일반

    韓 배드민턴 살린 눈물·웃음의 '밀당 워맨스'

    • 2016-08-19 13:00

    [임종률의 리우 레터]

    '우리 이런 사이예요' 정경은(왼쪽), 신승찬이 19일(한국 시간) 브라질 바하 리우센트로 파빌리온 4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하트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사상 첫 올림픽 노 메달 위기에 빠진 한국 배드민턴을 구한 건 간판 스타 이용대(28 · 삼성전기)가 아니었습니다. 배드민턴 대표팀 복식조 중 가장 어린 조합의 막내팀 여자 복식 정경은(26 · KGC인삼공사)과 신승찬(22 · 삼성전기)이었습니다.

    애초 계획된 구성이 아닌, 갑작스러운 교체와 결합. 메달 기대주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약 1년의 짧은 시간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밀고 당기기 끝에 소중한 결실을 맺었습니다.

    둘은 18일 밤(한국 시각) 브라질 리우센트루 4관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탕위안팅-위양(중국)을 2-0(21-8 21-17)으로 완파했습니다. 둘 모두 첫 올림픽 메달입니다.

    이번 대회 한국 배드민턴의 처음이자 마지막 메달이기도 합니다. 당초 대표팀은 이번 대회 최소 금메달 1개 이상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남자 복식 세계 1위 이용대-유연성(30 · 수원시청)에 대한 기대감이 컸습니다.

    여기에 세계 3위 김사랑(27)-김기정(26 · 이상 삼성전기)와 혼합복식 세계 2위 고성현(29 · 김천시청)-김하나(27 · 삼성전기)도 금메달 후보로 꼽혔습니다. 단식에서도 여자 세계 7위 성지현(26 · MG새마을금고)과 남자 8위 손완호(28 · 김천시청)도 잘만 하면 메달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믿었던 이용대-유연성이 8강에서 세계 12위에 충격의 패배를 안았습니다. 고성현-김하나와 김사랑-김기정 역시 8강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성지현, 손완호 등도 줄줄이 8강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분위기가 심각해졌습니다. 리우에서 대표팀에게는 악몽과도 같았던 8강이었습니다.

    사상 첫 노 메달의 위기감이 엄습해왔습니다. 대표팀은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2012 런던 대회까지 빠짐없이 메달을 캐냈습니다. 금메달 6개, 은 7개, 동 5개로 나름 효자 종목에 분류됐습니다. 그런데 리우에서 대위기를 맞은 겁니다.

    배드민턴 정경은, 신승찬이 15일(현지 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리우센트로 파빌리온4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복식 8강전에서 네덜란드 에이피에 무스켄스, 셀레나 픽을 상대로 경기를 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런 가운데 유일하게 8강의 저주에서 벗어난 팀이 정경은-신승찬이었습니다. 세계 5위인 둘은 지난 15일 8강에서 세계 11위 에이피에 무스켄스-셀레나 픽(네덜란드)을 눌렀습니다. 다만 뒤이어 열린 4강전에서 세계 1위 마쓰모토 미사키-다카하시 아야카(일본)에 졌습니다. 이들은 일본 배드민턴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최강팀이었습니다.

    정경은-신승찬은 아픔을 딛고 동메달을 따내 한국 배드민턴의 메달 명맥을 이었습니다. 경기 후 정경은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을 누렸습니다.

    이후 인터뷰에서 둘은 아쉬움을 털어놓으면서도 홀가분한 마음도 들려줬습니다. 언니 정경은은 "일단 끝나서 너무 기분좋고 동메달이라도 따고 갈 수 있어 감사드린다"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값진 메달"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신승찬도 "4강전은 아쉬웠다"면서도 "많이 힘들었는데 (동메달 결정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나와 메달도 딸 수 있어 기분 되게 좋다"고 후련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배드민턴 선수단의 대회 첫 메달. 이용대, 유연성 등 선수들은 이날 경기장을 찾아 열띤 응원으로 마지막 남은 희망 정경은, 신승찬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동료들의 응원이 동메달 스매싱의 속도를 조금은 높여줬을 겁니다.

    정경찬은 "다들 힘든 과정을 겪고 고생해서 왔다"면서 "그런 걸 아니까 (메달 무산이) 가슴이 아픈데 마지막까지 나와서 응원해준 동료들이 제일 고맙다"고 애틋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신승찬도 "끝까지 나와서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한다"면서 "조금이나마 보답한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둘의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특히 정경은은 김하나와 함께 나선 4년 전 런던 대회 여자복식에서 위양-왕샤올리(중국)의 이른바 져주기 파문에 휩쓸려 실격을 당했습니다. 정경은은 "4년 전 안 좋은 일이 있었고, 이번 대회도 우리밖에 안 남아서 부담이 컸다"면서 "4강전 뒤에는 진짜 힘이 들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언니 울지마요' 18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리센트루 파빌리온4에서 열린 배드민턴 여자복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정경은(오른쪽)이 중국의 탕위안팅, 위양에게 세트스코어 2대 0으로 완승한 뒤 눈물을 흘리자 신승찬이 위로하고 있다.(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래도 서로 믿어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정경은은 "4강전 끝나고 힘들어 했지만 서로 다시 다독이면서 얘기하다 보니 8강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경기를 했다"면서 "그게 제일 좋다"고 언니다운 답변을 내놨습니다.

    사실 둘은 호흡을 맞춘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경은은 당초 장예나(27 · 김천시청)와 짝을 이뤘지만 성적이 좋지 않아 대표팀은 파트너 교체를 단행했습니다. 올림픽을 1년 정도 앞둔 시점에서는 모험일 수 있었습니다. 서로 눈빛만 봐도 척 알아서 해야 하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 손발을 맞출 시간이 경쟁자들보다 부족해 이를 벌충하기 위해 더 힘든 노력이 들어갔을 것임은 자명합니다.

    이런 힘겨운 과정은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절절하게 드러났습니다. 정경은은 "(짝을 이룬 지) 1년 됐는데 (신승찬이) 잘 따라와줬다"면서 "4살 차이인데 언니한테 스스럼없이 하는 게 제일 고맙다"고 운을 뗐습니다. 이어 "4강전 끝나고도 수고했다는 말도 못했는데 그게 제일 미안하고 너무 고맙다"고 말하면서 새삼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이에 동생에까지 눈물 바이러스가 퍼졌습니다. 한동안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잇지 못한 신승찬은 "솔직히 내 실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올 것이 아니었다"면서 "언니가 세계적인 선수에 들 정도로 잘하는데 우리가 복식을 해도 되나 할 정도로 버거웠다"고 그동안의 심적 부담을 털어놨습니다.

    '모두 다 고생했습니다' 2016 리우 하계올림픽을 50일 앞둔 지난 6월 16일 오후 태릉선수촌 오륜관에서 열린 배드민턴팀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선수 및 코칭 스태프들이 선전을 다짐하는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이어 "언니가 계속 옆에서 '괜찮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앤데' 끌어올려줬다"면서 "혼낼 땐 혼내고 잘 했을 때는 잘 했다 해줬다"고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신승찬은 또 "저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언니가 자신도 컨트롤해야 하고, 나도 컨트롤해야 하고 옆에서 많이 힘들어 했다"면서 "여기까지 이끌어 나한테 너무나도 값진 동메달 안겨줘서 감사한다"고 눈물을 닦아내고 비로소 환하게 웃었습니다.

    훈련은 짧았지만 호흡은 좋았습니다. 정경은은 "1년을 남기고 파트너 교체가 쉽지 않은데"라는 말에 "운도 따라줬다"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다 보니 집중해서 했고, 승찬이의 네트 플레이와 내 후위 역할이 많이 맞아떨어졌다"고 동메달의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에 호흡을 맞추기 위해 더 많은 시행착오의 기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둘의 궁합은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언니가 힘들어도 둘을 끌어줬고, 동생 역시 어려웠지만 믿고 따랐습니다.

    그 결과가 리우올림픽에서 나온 한국 배드민턴의 명맥을 이어준 메달이었습니다. 그걸 정경은, 신승찬이 대표팀에 안기며 동료들의 상처를 감쌌습니다. 유일한 메달이었지만 의미가 컸고, 대표팀은 아쉽지만 그래도 값진 성과를 안고 귀국길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야호, 야자 타임이다' 배드민턴 여자 복식 정경은(오른쪽)-신승찬이 18일(현지 시각)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3, 4위 결정전에서 승리해 동메달을 확정한 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신승찬이 "야자 타임 한번 하라"는 취재진의 말에 환호하는 모습.(리우=노컷뉴스)

     

    p.s-그렇다면 올림픽 이후에도 둘은 쭉 같이 가는 걸까? 향후 계획을 묻자 둘은 "아직 생각을 안 해봤는데…"라며 말끝을 살짝 흐렸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혹시나 싶어 앞서 정경은이 했던 "4살 차이인데 스스럼없다는 말에 뼈가 있는 것이냐"는 농담섞인 질문을 슬쩍 던져봤습니다. 이를 덥썩 물었습니다. 정경은은 "없다고 할 수는…"이라고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뭔가 건지려고 하는데 신승찬이 "이제 끝났으니까 말 안 하죠"라며 유쾌하게 웃으며 빠져나가더군요. 막내라지만 언니의 훈육(?)에 단련된 내공이 제법 느껴지는 대목.

    둘의 다정한 사진 촬영을 요청하면서 "이제 야자 타임을 한번 하는 게 어떠냐"는 말을 하자 신승찬은 "그러자"고 환호를 질렀습니다. 그런 동생을 정경은은 귀엽게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리우에서 한국 배드민턴의 노 메달 위기를 극복한 원동력, 4살 차 파트너의 눈물과 웃음이 섞인 '밀당' 워맨스(Womance)는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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