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장경석 수사부장(가운데)이 고 백남기 농민 유족 면담 요청과 함께 부검을 위한 5차 협의요청 공문을 전달하기 위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경찰 물대포를 맞고 숨진 고 백남기 씨 장례식장에 서울지방경찰청 간부가 직접 방문해 부검 관련 협의를 하자고 유족 측과 협의를 시도했다.
백 씨 부검과 관련한 경찰의 5번째 협의 제안이다.
경찰 부검을 반대해 온 유족 측은 부검 영장 집행을 위한 명분 쌓기용 '언론플레이'라고 반발했다.
◇ "부검 협의 없다"는 유족 측에 또 방문…20분 만에 나와서울청 장경석 수사부장(경무관)은 17일 오후 2시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근무복을 입고 정모를 쓴 채 나타났다. 수사 책임자와 경호 직원도 동행했다.
현장에는 미리 소식을 듣고 달려온 취재진 수십명이 몰려 있었다.
장 부장은 장례식장 건물 내 상담실로 들어가 이정일·조영선 변호사 등 유족 측 법률대리인단에 5차 협의 공문을 전달하고 20분간 면담한 뒤 나왔다.
유가족은 이번에도 부검을 전제로 한 협의에는 절대 응할 수 없다며 나오지 않았고, 법률대리인 역시 특별히 협의할 내용이 없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
경찰이 들고 온 5차 공문은 부검 협의를 위해 대표자를 선정하고 협의 일시·장소 등을 통보해달라는 것으로 1~4차와 같다. 통보 시한은 19일까지로 주기가 더 짧아졌다.
장 부장은 "유족은 경찰이 사인을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온 국민이 다 쳐다보고 있는 사건에서 누가 감히 사인을 조작할 수 있겠는가"라며 "부검할 수 있도록 협의해주시기를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이어 강제집행 가능성이나 5차 협상 결렬 이후 그때는 누가 올 것인지 묻는 질문에 "유족 측에서 부검에 협조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하지만 종로경찰서장에 이은 상급기관 서울청 간부의 방문은 부검영장 강제집행을 위한 포석으로 진정성 없는 언론플레이라는 게 투쟁본부 측 분석이 나온다.
투쟁본부 측은 "경찰은 진정성을 보여주겠다고 하지만 이건 사실상 또 하나의 폭력"이라며 "살인 경찰이 유가족을 만나서 부검에 관한 협의를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 얘기냐"고 성토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장경석 수사부장이 고 백남기 농민 유족 면담 요청과 함께 부검을 위한 5차 협의요청 공문을 전달하기 위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빨간우의 공방, 백남기 측 "부검 위한 명분에 불과"대리인과의 면담에서는 '빨간우의 가격설'이 주요 쟁점이었다.
앞서 검찰이 백 씨 의무기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사고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겠다며 이른바 '빨간우의'를 거론한 사실과 경찰이 그를 지난해 조사한 사실이 알려진 상황.
경찰과 법률대리인단의 말을 종합하면, 이정일 변호사는 면담중 "빨간우의가 백남기 어르신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타격하지 않았다는 게 당시 영상과 의무기록으로 명백하게 확인됐는데도 부검계획을 철회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부검은 필요하다"고 답하며 부검 강행의사를 재차 밝혔다.
경찰은 또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부검을 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조영선 변호사는 "경찰이 당시 그에 대해 집시법(집회·시위 관리에 관한 법률)과 일반교통방해 혐의만 조사하고 폭행 사건을 수사하지 않은 건 상당히 의문스럽다"며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등장시킨 건 결국 부검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빨간우의 가격설'이란 사고 당시 백 씨가 쓰러지자 주변 사람들이 돕는 과정에서 빨간 우의를 입은 한 남성이 백 씨를 가격했다는 주장을 말한다.
사고 당시 백 씨를 구조하다 물대포를 맞고 잠시 휘청거리며 백 씨 쪽으로 넘어졌는데 백 씨의 사인은 물대포가 아니라 이 남성의 가격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이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에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