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뒤숭숭한 기획재정부에 24일 폭탄이 떨어졌다. 이날 오전 9시 50분쯤 검찰 수사관들이 기재부 사무실에 들이닥친 것이다. 10~12명 정도되는 수사관들은 기재부 1차관실과 정책조정국, 세제실 관세제도과 등 3개 사무실로 나뉘어 곧장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되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6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인수 관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은 있지만, 그때는 검찰이 영장 발부없이 임의제출 형태로 ‘신사적으로’ 자료를 받아갔다.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수사관들이 들이닥치는 모습을 처음 본 기재부 직원들은 얼떨떨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불과 하루 전에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원들에게 “자기비하를 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지 말라”고 다독인 것도 헛심을 쓴 셈이 됐다.
유일호 부총리도 이날 수사관들이 들이닥친 뒤에야 관련 부서로부터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전격적으로 벌어진 검찰의 압수수색은 오전 9시 50분부터 시작해 저녁 늦게까지 계속됐다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전동공구를 든 수리공이 들어갔다 나왔고, 전산실 관계자도 압수수색 중인 방으로 불려 들어갔다. 무언가 잠긴 서랍이나 캐비닛을 열고, 또 컴퓨터의 보안장치를 푸는 등의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오후 12시 30분에는 도시락이 배달돼 압수수색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최상목 차관의 방에서 압수수색이 끝난 것은 이날 오후 5시 30분쯤이었다. 수사관들의 손에는 서류봉투와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정책조정국과 관세제도과에 대한 압수수색은 이보다 더 오래 진행됐다.
검찰은 이날 기재부 외에도 관세청과 롯데그룹, SK그룹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동시에 실시했다. 롯데와 SK는 지난해 각각 롯데 월드타워점과 SK 워커힐점의 면세점 특허가 종료된 뒤 재승인에 탈락한 기업들이다. 그리고 기재부와 관세청은 지난 4월 29일 서울에 추가로 면세점 4곳을 더 승인하기로 결정한 부처다.
기재부에서도 이날 검찰이 압수수색한 1차관실은 면세점 추가 승인을 총괄한 곳이고, 관세제도과는 그 실무부서다. 또 정책조정국은 3월 31일 경제관계장관회의 안건에 들어간 면세점 제도개선 방안을 조율한 곳으로 모두 면세점과 관련이 있다.
이에따라 검찰은 롯데와 SK가 올 초 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내면서 그 대가로 재승인에 탈락한 롯데와 SK 면세점을 부활시켜 주기로 했을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SK와 롯데는 박근혜 대통령과 지난 2월과 3월 독대를 했고, 대통령 면담 직후 나란히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80억원(SK)과 75억원(롯데)을 추가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어 지난 3월 최상목 1차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면세점 제도 개선안을 3월말로 앞당겨 발표한다"고 밝혔고, 이는 3월 3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식 안건으로 논의됐다. 이어 4월 29일 관세청이 서울시내에 면세점 4곳을 추가로 설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탈락한 롯데 월드타워점과 SK워커힐점의 회생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정부는 지난 6월 3일 면세점 특허신청 관련 공고를 낸 뒤 10월 4일 신청을 마감했고, 롯데와 SK, HDC신라,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이 입찰했다. 대기업에 배정된 면세점은 3개로 경쟁률은 1.7:1에 불과하다. 최종결과는 다음달 중순 발표된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통해 대통령과의 독대와 K스포츠재단 출연금 납부, 그리고 면세점 4곳 추가 설치의 연관성이 밝혀진다면, 재단출연금의 대가성이 입증돼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죄 혐의 적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사상 초유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압수수색 그것도 8시간에 가까운 수색 끝에 검찰이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또 관세청과 롯데, SK 등 1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수확은 있었을까. 검찰이 끝내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찰 수사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