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년 가까이 미뤄온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이르면 올해 안에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당초 검토했던 방안보다 후퇴할 것으로 보여, 야권과의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16일 "연내 발표를 목표로 부과체계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하지만 시점이나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해 1월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 "최신 자료로 시뮬레이션을 정교하게 해야 한다"며 돌연 백지화했다. 여론에 밀려 다시 추진하긴 했지만 2년이 되도록 별다른 진전사항은 일체 내놓지 않았다.
때문에 "여권 지지층인 고소득자 눈치를 보느라 청와대가 방향을 틀었다"는 관측이 당시부터 제기되기도 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진엽 장관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올해 안에 개편안을 내놓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부과체계 개편은 내년이면 도입 40주년을 맞는 건강보험제도의 해묵은 과제다. 우여곡절 끝에 2년 가까운 시간이 허비됐지만, 복지부가 내놓을 방안은 당초 발표하려던 개편안보다도 후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모두 소득 중심으로 부과 기준을 일원화한다는 게 당초 방안이었지만, 단계적으로 재산에 대한 부과 비중은 줄이되 현재의 이원화된 큰 틀은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다만 저소득 지역 가입자들에 대해선 '성별'과 '나이'에 따른 부과기준을 폐지하고, 소득이 없는 경우엔 최저보험료를 월 1만원 안팎의 정액으로 내게 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연금이나 금융 소득이 각각 4천만 원을 넘지 않으면 보험료를 내지 않았던 직장인 피부양자의 소득 기준을 합계 2천만 원 이하로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의 당초 개편안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모두 소득 중심으로 부과 기준을 일원화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급여 외에도 금융자산 등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직장인에겐 건보료를 더 걷되, '송파 세 모녀'로 상징되는 저소득층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내린다는 대전제 하에 7개의 구체적 모형까지 완성된 상태였다.
당초 방안대로라면 전체 가입자의 90%인 600만명의 보험료는 내려가는 반면, 빌딩 소유자나 대기업 사주 등 27만명의 자산가와 이른바 '고소득 무임승차자' 19만명은 더 많은 건보료를 내야 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소득이 있는 곳에는 기본요율을 정해서 금융소득이든, 임대소득이든, 근로소득이든 부과하는 게 맞다"며 "피부양자 자격 역시 소득이 있다면 주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역시 지역·직장 가입자 상관없이 소득 중심으로 부과 기준을 일원화하는 개편안을 일찌감치 내놓고 정부를 압박해온 상태다.
직장·지역 구분을 없애고 대부분의 소득에 건보료를 물리는 대신, 재산이나 자동차 또는 성별과 연령 등에 대한 부과기준은 없애자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현행 '이원 체제' 유지 방안을 내놓을 경우, 탄핵 이후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야권과의 갈등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당장 오는 19일 예정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와 21일 대정부질문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