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기울어 침몰하던 세월호를 화면을 통해 지켜보지 않았다.
TV가 없어서였다.
박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본관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머물렀다.
"공식 일정이 없고, 신체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세월호 참사 상황을 국가안보실과 사회안전비서관 등에서 보고서로 받았거나 전화로 보고받았다는 게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에 밝힌 세월호 7시간의 행적이다.
박 대통령 측은 그곳을 '관저 집무실'이라고 불렀다. (국회 측은 본관 집무실만 집무실이라며 법적 근거를 요구한 상태다.)
"공식적으로 빈번하게 이용해온 사무공간으로 책상과 컴퓨터, 서류철로 가득하며, 대통령이 그곳에서 전자결재를 하거나 주로 보고서를 읽고 행정부처, 비서실 등과 전화를 하며 각종 보고를 받고 업무 지시를 하는 곳"이라는 게 박 대통령 측 답변서의 2~3쪽 설명이다.
당시 국가안보실장이었던 김장수 주중대사의 최근 국회 청문회 증언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당일 오전 10시 15분쯤 박 대통령에게 "YTN을 보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TV가 없었다.
박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10일 3차 변론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관저에 TV가 없다고 들었다"며 "관저 집무실에서 TV를 안 보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측근에서 보좌하는 안봉근, 정호성 등 비서진은 (관저에) 별도의 사무공간이 있고 그곳에 TV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이 보도되면 직접 혹은 전화나 쪽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경우가 있다"고 박 대통령 측은 답변서에 덧붙였다.
당일 오전엔 안 전 비서관이 직접, 점심 식사 이후에는 정 전 비서관이 대면으로 세월호 관련 상황을 보고했다고 박 대통령 측은 밝혔다.
당시 언론에서 '전원 구조' 등 숱한 오보가 쏟아졌더라도, 침몰하는 세월호의 모습을 이들 '문고리 3인방'이 어떻게 설명했을지는 아직 드러난 게 없다.
이들은 잠적해 탄핵심판 증인출석요구서도 받지 않고 있다.
당일 오후 5시를 넘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은 박 대통령이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한 발언도 여전히 논란이다.
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00일 추모음악회'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국회 측은 "사태와 동떨어진 발언을 했다. 전혀 상황 파악을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박 대통령 측은 "(실종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일종의 질책"이라고 반박한다.
박 대통령 측이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는 박 대통령이 당일 오전 10시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사고 상황과 조치 현황보고서(1보)를 받아 검토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중대본을 방문할 때까지 보고와 지시가 담겼다.
세월호 참사 1001일째, 헌재가 답변을 요구한지 19일 만에 제출된 답변서지만, 청와대 홈페이지글과 '데칼코마니'다.
추가된 건, 당일 오후 3시 35분쯤 미용담당자가 관저에 들어와 약 20분 동안 머리 손질을 했다는 부분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3차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 헌재 재판관들이 자리한 가운데 증인석이 비워져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사적인 부분'까지 소명하라고 주문했던 헌재 재판부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요구에 좀 미치는,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보완을 요구했다.
김장수 전 실장과 여러 차례 통화했다는데, 통화내역도 제출되지 않았다.
당일 오전 9시 53분 세월호와 무관한 외교안보수석의 국방 관련 서면보고를 받아 검토했다는 것으로 시작된 7시간 행적 시간표에는 윤전추 행정관이 증언한 ‘비공식 업무’가 무엇인지도 빠져있다.
박 대통령이 평소처럼 기상해 아침식사를 한 뒤 관저 집무실로 들어갔다고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앞서 국회 측은 헌재에 낸 서면에서 "대통령이 마음대로 다른 공무원과 달리 관저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지'도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