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을 파는 서울의 한 식당은 초복이었던 12일 1만 5천 원짜리 삼계탕을 1000그릇 팔아 1,5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이 1,500만 원은 손님들이 대부분 신용카드로 결제한 탓에 며칠 후 카드 회사로부터 돈이 들어오게 되는 '신용카드 매출 채권'이다.(그림 1 참고)
이 식당은 초복 다음 날인 13일도 여전히 문을 열어야 하지만 12일의 판매 대금은 며칠 후에 들어오기 때문에 당장 필요한 식자재를 사려면 어디선가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만일 자금이 준비돼 있지 않다면 통상 저축은행이나 사채업자에게 단기로 돈을 빌리게 되는데 금리가 연 19%이상으로 비싸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식당은 삼계탕 판매 대금 1,500만 원을 카드 회사를 통해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카드 회사에 낸다.
신용카드의 경우 가맹점 수수료의 평균은 여신금융협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2.09%였다.
이런 결제 구조에서 만일 이 식당의 신용카드 매출 채권 1,500만 원어치를 신용카드회사가 아닌 은행이 '양도'받는 대신 이자를 조금 떼고 판매 다음날인 13일에 돈을 줄 수 있다면 어떨까.(그림 2 참고)
은행 측은 이 채권을 가지고 있다가 손님들이 카드 대금을 결제하면 카드 회사로부터 그 돈을 받으면 된다.
예금을 취급하지 않는 카드 회사의 입장에선 카드 대금이 들어오기 전에 가맹점에게 줘야 하는 돈을 카드채 발행 등을 통해 자본 시장에서 이자를 주고 조달해야 하지만 예금을 가지고 있는 은행이 이 돈을 대신 주기 때문에 자금 조달 비용이 줄어든다.
식당 입장에서는 급전을 빌리지 않아도 되고, 카드 회사가 조달 금리 부담이 없는데 따라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면 은행에 매출 채권을 넘겨주면서 물게 되는 이자가 수수료 인하폭보다 적을 경우 이익이다.
이처럼 신용카드 매출 채권을 은행에 양수도하는 ‘팩토링(factoring)'방식의 단기 금융 거래가 지난해 3월 여신전문금융업법 20조(매출 채권의 양도 금지)의 개정으로 가능하게 됐다.
팩토링은 거래 기업이 외상 매출 채권을 팩토링 회사에 양도하고 팩토링 회사는 거래기업을 대신하여 채무자로부터 매출 채권을 추심하는 동시에 이에 관련된 채권의 관리 및 장부 작성 등의 행위를 인수하는 단기 금융의 한 방법이다.(factor = 위탁매매인)
그러나 이런 팩토링 방식으로 가맹점 수수료를 낮춰 보자고 소상공인(상시 근로자 5인이하 사업장 운영자)들이 지난해부터 당국에 건의하고 있으나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월 9일 금융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소상공인의 매출액 대부분인 75%가 신용카드 매출(체크카드 포함)"이라며 여전법 20조 개정으로 은행이 신용카드매출채권을 양도받을 수 있게 돼 "(가맹점) 수수료 인하나 유동성 제약 해소 방법의 하나로 기대했으나 활성화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신용카드 매출 채권 할인 상품 개발 등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을 요청한다"고 건의했으나 금융위원회에선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다고 소상공인연합회측은 전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은 이런 가맹점 수수료 인하 방안에 대해 "금융위원회도, 카드 회사들도 의지가 없다. 어려운 소상공인들을 위해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줘야 하지 않나"고 말했다.
반면 카드회사들을 대변하는 여신금융협회의 이태운 사업본부장은 "은행들이 관심이 없다. 새로운 인력을 투입하고 인프라도 구축해야 하는데 여기 드는 비용을 감안하면 매력이 없을 것이다. 카드회사로서도 카드가맹점 수수료는 많이 내려가 있고 더 인하할 여력도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금융통계시스템을 보면 지난해 KB국민카드 등 8개 카드사가 가맹점들로부터 얻은 수익은 11조 601억 원으로 전체 수익의 53.8%를 차지했다.
또 이 가맹점 수익은 2011년 8조 2,290억 원, 2012년 8조 4,791억 원, 2013년 8조 8,733억 원, 2014년 9조 6,988억 원, 2015년 10조 7,295억 원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카드사들이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할 여력이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또 금융당국이나 은행측이 카드매출채권을 '매입'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으며 채권 양수도를 통한 '팩토링'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적극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현행법상 은행이 카드 매출 채권을 매입할 수도 없을 뿐더러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매입이 가능하도록 하더라도 채권을 카드 회사와 최종 정산하는 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용인 정산 수수료를 결정할 수 있는 기제가 우리나라엔 없고, 은행들이 계열 카드사와 같은 일을 하게 되니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고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지적한다.
대신 현행법상으로 가능한 팩토링을 활성화하면 가맹점과 은행, 카드회사가 모두 비용을 줄이거나 이익을 낼 수 있고 가맹점 수수료는 "최대 1% 가량" 내릴 수도 있는데도 카드사들이 경쟁구도 격화를 원하지 않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을 소상공인측은 갖고 있다.
이처럼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나 시각이 달라 신용카드 매출채권 팩토링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상황이 지난해 여전법 20조 개정 이후 계속돼 왔으나 최근들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이 팩토링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국면이 전환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공약했다. 우대 수수료의 적용 대상을 우선 확대하고 수수료 추가 인하도 계속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 공약 사항을 중심으로 국정과제를 정리하고 있는 국정기획위가 이 팩토링 방식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도 실무 부서에서 이 방안을 뒤늦게 다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