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딕훼밀리의 히트곡 '또 만나요'를 작곡한 싱어송라이터 오세은이 암 투병 중 별세했다. 향년 69세.
고인의 장남은 2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아버지가 올해 3월부터 폐암으로 투병하셨는데 뇌로 전이되면서 급격히 나빠지셔서 어제 오후 4시 세상을 떠나셨다"고 말했다.
오세은은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란 가사로 시작하는 '또 만나요'를 작사·작곡했다. 이 노래는 1970년대 중반부터 백화점을 비롯해 유흥업소, 상점에서 폐장곡으로 널리 쓰이며 '국민 엔딩송'으로 불렸다.
1948년 서울 출생인 고인은 1966년 성균관대 법학과에 입학하면서 1967년 정성조와 함께 결성한 아이돌스를 시작으로 훌라워스, 영바이블스, 라이더스, 메가톤스로 이어지는 록밴드들의 리드 기타 겸 보컬리스트로 미8군 무대에 섰다.
본격적으로 통기타 가수로 나선 것은 1971년 '한국 포크의 성지'로 불리는 명동 YWCA청개구리홀 무대에 서면서다.
1980년대부터 고인은 국악에 매진했으며 2004년 서울 YWCA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며 활동을 재개했다.
2007년에는 앨범 '더 블루스'(The Blues)를 발표해 블루스에 천착하기도 했다. 1988년 국악이 접목된 음반 '남사당' 이후 대중음악 음반은 19년만이었다.
이어 2012년에는 '오 블루스 밴드'를 결성해 국악과 블루스를 접목한 앨범 '블루 코리아'(Blue Korea)를 선보였다.
고인의 음반들은 가요사에서 대표적인 희귀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1974년 발표해 금지곡이 된 '고아'가 수록된 3집은 저주받은 걸작이자 한국 포크의 명반으로 꼽힌다.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 씨는 "고인은 1970년대 중반까지 여학생 잡지의 사진 모델로 등장했던 미남 인기 가수였다"며 "정미조, 딕훼밀리, 한영애, 윤연선 등 당대 인기 가수들에게 히트곡을 준 유명 작곡가였으며 편곡자로도 명성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독보적인 '블루그라스' 기타 주법을 완성한 이후 기타로 국악 산조 연구에 함몰돼 고인의 이름은 대중의 기억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며 "무거운 짐을 들다가 손을 다쳐 연주를 못하게 될까 두려워 한 번도 아내의 장바구니를 들어준 적이 없다는 고인은 음악을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둔 외골수 뮤지션이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TBC 탤런트 출신인 부인 이보임 씨와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건강관리공단 일산병원 장례식장 9호실, 장지는 경기도 양평 하늘숲추모원이며, 발인은 24일 오전 7시30분이다. ☎ 031-900-0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