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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같은 비극, 제주4.3과 대만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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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 같은 비극, 제주4.3과 대만 2.28

    제주CBS 4.3 70주년 연속기획 사건발생과 희생자 규모 비슷

    대만 2.28 사건 당시의 폭격과 총알 흔적이 보존된 가오슝사립고등학교의 건물. (사진=이인 기자)

     

    2018년이면 제주 4.3 사건이 70주년을 맞는다. 희생자를 기리고 유족을 위로하는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지만 4.3의 전국화와 세계화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제주CBS는 4.3의 비극과 같고 한해 먼저 70주년을 맞은 대만 2.28 사건을 통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고민하는 연속기획, ‘대만 2.28 사건에서 제주 4.3 70주년을 묻다’를 마련했다. 18일은 첫 번째 순서로, ‘제주 4.3의 비극과 같은 대만 2.28 사건을 보도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다른 나라 같은 비극, 제주 4.3과 대만 2.28
    ② 제주 4.3이 공산 폭동? 대만은 전국에 2.28 기념비
    ③ 대만2.28 보상 22년…제주4.3은 이제야 法 발의
    ④ 총통이 기념하는 대만 2.28, 대통령 없는 제주 4.3
    ⑤ 대만 국민 모두가 아는 2.28, 제주도민만 아는 4.3


    대만 2.28 사건의 유족인 양전뤙(65)씨는 70년 전인 1947년 작은 아버지를 잃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자유권이 박탈되는 아픔을 겪었다.

    특히 작은 아버지는 철사와 돌로 묶여 동료들과 함께 바다에 던져 졌고 그렇게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

    양씨의 할아버지는 지롱시의 참의원, 아버지는 의사, 작은아버지는 교사였다. 대만의 지식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쿤링(87) 할아버지는 독서회 참가를 이유로 붙잡혀 불법조직 참가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대만 징메이 국가인권기념관에 있는 백색테러 희생자 명단 앞에서 차이쿤링(87) 할아버지가 당시의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인 기자)

     

    차이 할아버지가 체포된 건 고등학교 졸업 1년 후인 1950년 9월로 여러 곳의 구치소를 전전하다 훠샤오라는 섬에서 대부분의 감옥살이를 했다.

    가오슝시의 판순뤼 교육국장은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 당시 기자를 하다 90일 간 체포됐다.

    70년 전에 발생한 대만 2.28 사건은 중국 대륙에서 건너 온 ‘외성인’과 대만 현지에 살던 '본성인' 간 갈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1945년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난 대만이 중국 국민당 정권의 통치아래 놓이면서 중국인들이 대만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대만 현지에 살던 '본성인'이 압도적 다수임에도 중국에서 건너온 ‘외성인’의 사실상 지배를 받으면서 갈등이 극심했던 것이다.

    2.28 사건의 발단도 1947년 2월 27일 전매품인 담배를 몰래 팔던 대만 현지 여성이 중국 대륙 출신 단속원에게 구타당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대만 2.28 사건이 최초 발생한 타이베이 영러시장 근처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 시민이 기념비에 기록된 사건 내용을 보고 있다. (사진=이인 기자)

     

    항의하는 본성인들을 향한 경찰의 발포와 학생의 사망은 다음날인 2월 28일 대만 현지인들의 집단 봉기로 이어졌다.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과 이른바 국공내전을 벌이던 국민당 정부는 1947년 3월 8일 2개 사단 규모의 군대를 대만에 파견했고 3개월간 이어진 잔혹한 진압과 대규모 살상으로 1만 8000명에서 2만 8000명이 희생당했다.

    대만 국립정치대 주리시 교수는 "국민당이 파견한 군대가 대만의 지식인들을 몰살한 사건으로, 최대 2만 8000명이 숨졌지만 대부분이 행방불명돼 찾지도 못하고 있다"며 한마디로 참혹함 그 자체라고 말했다.

    양전뤙씨 가족의 사례에서도 당시 희생자의 대부분이 대만의 지식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국민당은 특히 국공내전에서 져 대만으로 완전히 철수한 1949년 5월에는 계엄령까지 선포했다.

    장제스 정부에서 시작한 계엄령은 1987년까지 무려 38년이나 지속됐다.

    메이리다오 사건의 피해자인 대만 가오슝시의 판순뤼 교육국장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인 기자)

     

    이를 대만의 백색테러 시대로 부르는데 차이쿤링 할아버지와 판순뤼 가오슝시 교육국장이 바로 백색테러의 피해자들이다.

    2.28 사건이 백색테러로 이어지며 대만의 무고한 국민이 희생되거나 탄압을 받은 것이다.

    물론 2.28 사건부터 계엄령이 지속된 40년간 대만 국민들이 2.28 사건을 입에 올리는 건 금기시 됐다.

    사건 발생 시점과 희생자 규모, 사건의 금기시화 측면에서 대만 2.28 사건은 제주4.3 사건의 비극과 너무나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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