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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된 세월호 생존자 "친구야, 18살 모습 기억해줘"



사회 일반

    대학생된 세월호 생존자 "친구야, 18살 모습 기억해줘"

    - 소방공무원 꿈꿔… 초기구조 나서고파
    - 우리는 '구조'된 적 없어, 스스로 '탈출'
    - 가끔 배 사고 꿈 꿔…,4월 벚꽃 보면 먹먹
    - "꼭 다시 만나자. 18살 우리 모습 기억해줘"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장애진(세월호 생존 학생)

    아까 훅 뉴스도 저희가 다뤘습니다마는 2014년 4월 16일. 이 날짜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턱턱 막히는 기분, 저는 드는데요. 월요일 참사 4주기를 앞두고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한 사람을 좀 먼저 만나보려고 합니다. 지난해 세월호 1000일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에서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쓴 편지를 낭독해서 큰 화제가 됐던 학생, 여러분 기억하세요?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 학생인데요. 독일에서 열린 2017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인권상 시상식에서 촛불시민 대표한 수상을 하기도 했던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오늘 직접 만나보죠. 장애진 학생, 안녕하세요?

    ◆ 장애진> 안녕하세요.

    ◇ 김현정> 자기 소개 좀 직접 해 주시겠어요?

    ◆ 장애진> 저는 세월호 생존 학생이고 지금 현재는 동남보건대학교 응급구조과에 재학 중인 장애진이라고 합니다.

    ◇ 김현정> 응급구조과?

    ◆ 장애진> 네.

    ◇ 김현정> 원래 어렸을 때부터 장애진 학생 꿈이 이거였던 거예요?

    ◆ 장애진> 원래는 유아교육과를 가고 싶어 했었어요.

    ◇ 김현정> 그런데 어떻게 전혀 다른 응급구조과를 갔네요?

    ◆ 장애진> 세월호 사건이 영향을 안 미쳤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어쨌든 저희가 초기 대응이 늦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거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 장애진> 그래서 응급구조과를 나와서 응급구조사가 되면 초기에 대응을 하는 거고 그리고 또 제가 많은 사람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잖아요. 도움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어서 이 과에 진학하게 된 거예요.

     

    ◇ 김현정> 그래요. 인생이 어떻게 보면 완전히 바뀌어버린 거네요. 유아교육 꿈꾸던 사람이 응급구조로.

    ◆ 장애진> 네.

    ◇ 김현정> 그렇죠. 저는 우리 장애진 학생이 세월호 1000일 때 광화문 무대에 올라서 편지 읽던 모습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제일 가슴이 아팠든 글귀가 뭐냐 하면 저희는 모두 구조된 게 아닙니다. 저희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너무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어요.

    ◆ 장애진> 네.

    ◇ 김현정> 이게 어떤 의미, 어떤 심정으로 했던 말이에요?

    ◆ 장애진> 이게 말 그대로 저희는 구조된 적이 없어가지고. 계속 저희는 가만히 있으라 했고 해경이든 막 들어와서 구조해 준 게 없잖아요. 저희가 저희 힘으로 방에서 나와서 비상구로 나가서 그냥 밖으로 저희가 나간 거거든요. 해경은 그냥 저희가 바다에 뛰어내리면 건져준 것밖에 없는 거니까. 그래서 당연히 저희는 구조가 된 게 아니라 탈출했다고 생각하거든요.

    ◇ 김현정> 지금 4년 지났는데도 그 탈출하던 당시 그리고 같이 탈출 못 한 친구들. 이런 장면들 지금도 꿈을 꾼다는 게 사실이에요?

    ◆ 장애진> 그렇게 꿈은 계속 꾸는 날도 있고. 저도 가끔은 꿈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는 그런 꿈도 꾼 적도 있어요.

    ◇ 김현정> 아이구..사실은 이때쯤 되면 막 벚꽃 보면서 설레야 되잖아요, 장애진 학생.

    ◆ 장애진> 그렇죠.

    ◇ 김현정> 그렇죠. 그런데 대학생이면 지금 막 벚꽃 구경 가고 벚꽃 밑에서 미팅도 하고 남자친구랑 손 잡고 다니기도 하고 그래야 되는 건데 이때쯤 되면 가슴이 먹먹해질 것 같아요. 이런 인터뷰도 해야 되고.

    ◆ 장애진> 그렇죠. 4월이 되면 안 그래도 더 먹먹해지죠.

    ◇ 김현정> 무슨 생각이 제일 많이 나요? 누구 생각이?

    ◆ 장애진> 처음에는 당연히 먼저 간 친구들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죠. 만약 살아 있으면 평범하게 대학교 다니면서 친구들과 벚꽃 사진을 찍고 그러면서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거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그 친구들 생각. 그래도 힘을 내고 우리가 씩씩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 친구들 생각해서라도 씩씩하게 잘 살아야 되잖아요.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 학생 (사진= 본인제공)

     

    ◆ 장애진> 네.

    ◇ 김현정> 졸업하면 뭐 하고 싶어요?

    ◆ 장애진> 소방공무원으로 들어가서 일하고 싶어요.

    ◇ 김현정> 현장 실습도 혹시 해 보셨어요? 3학년이면 해 봤을 법도 한데.

    ◆ 장애진> 병원 실습도 했고 이번에는 소방서에서 실습했었어요.

    ◇ 김현정> 소방서에서 실습할 때 괜찮던가요? 버틸 만했어요?

    ◆ 장애진> 네, 괜찮았어요(웃음)

    ◇ 김현정> 멋진 소방관 될 수 있겠네요, 장애진 학생. 잘 구해내는, 잘 구해내는 정말 좋은 소방관. 아까 전에 저희는 구조된 게 아닙니다, 우리는 탈출했습니다 이러셨는데 그래서 어른인 제가 참 미안하다는 얘기도 했는데 장애진 학생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으세요?

    ◆ 장애진> 저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세월호 침몰당시 (사진= 해경 제공)

     

    ◇ 김현정> 그 말 들으니까 제가 더 부끄러워지네요. 그날 저는 사실은 방송 끝내고 책상에 앉아 있는데 저희 방송국 TV에서 뉴스 속보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계속 그걸 보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 사실이 그때도 미칠 것 같았고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미칠 것 같습니다. 차라리 생중계가 되지 않았더라면 모르겠는데 온 국민이 생중계로 보고 있는데 이게 왜 구할 수가 없는 거지? 이 생각이 참 그때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든데 다시는 이런 일 벌어지지 말아야죠.

    ◆ 장애진> 그렇죠.

    ◇ 김현정> 장애진 학생이 훌륭한 응급구조사가 돼서 소방관이 돼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이 사회를 좀 바로세워주세요.

    ◆ 장애진> 네.

    ◇ 김현정> 그리고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친구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좀 적어왔다면서요.

    ◆ 장애진> 네.

    ◇ 김현정> 그거 읽어줄 수 있겠어요?

    ◆ 장애진> 네.

    ◇ 김현정> 자.

    ◆ 장애진> 우리는 너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우리가 나중에 너희들을 다시 만나는 날이 올 때 우리들을 잊지 말고 18살 그 시절 모습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 김현정> 그래요. 그 얘기 그때 하던데, 너무 보고 싶어서 답장이 안 올 줄 알면서도 메시지를 보내놓고 받지 않을 걸 알면서도 전화도 걸어본다. 지금도 그래요?

    ◆ 장애진> 다 그러는 것 같아요. 이렇게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어차피 안 볼 걸 알지만 그래도 거기다 쓰기도 하고 그러죠.

    ◇ 김현정> 그래요. 아마 그 친구들 페이스북 다 봤을 거예요, 하늘에서. 그리고 응원하고 있을 거예요, 친구들을 위해서. 이제 악몽 그만 꾸고 꽃구경도 가고 미팅도 하고 그러세요, 장애진 학생.

    ◆ 장애진> 네.

    ◇ 김현정> 오늘 고맙습니다.

    ◆ 장애진> 네.

    ◇ 김현정> 세월호 생존 학생이죠. 독일에서 인권상을 촛불시민들한테 줬는데 그때 이 학생이 가서 대표 수상을 했습니다. 장애진 학생이었습니다. ( 속기 = 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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