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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다큐는 '이슈'였을까, '영화'였을까



영화

    한국사회에서 다큐는 '이슈'였을까, '영화'였을까

    [현장]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 다큐멘터리, 한국 여성주의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쓰다
    경순-김일란-김보람 감독 스페셜 토크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 Seoul International Women's Film Festival)가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 여성 영화인을 발굴하고 제작 지원하는 데 힘쓰고 있으며, 여성영화를 전면에 놓음으로써 영화 다양성을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서울 서대문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5월 31일부터 6월 7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상영작을 소개하고, 여성영화제에서 오간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틀째였던 1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신촌에서 '옥랑 다큐멘터리, 한국 여성주의 다큐의 역사를 쓰다' 스페셜 토크가 열렸다. 왼쪽부터 조혜영 프로그래머, 경순 감독, 김일란 감독, 김보람 감독 (사진=김수정 기자)

     

    한국 영화 시장은 점점 더 몸집을 키워가는 것처럼 보인다. 몇십억 제작비는 이제 할리우드 대작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가 매년 탄생하고 있다. 하지만 독립영화(혹은 다양성 영화)의 사정은 다르다. 1만 관객 돌파가 유의미한 수치가 된다. 그 기록이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에서 나올 경우, 더욱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 사회에서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어 하는, 보고자 하는, 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은 얼마나 될까. 아니, 무엇보다 다큐멘터리는 관객에게 '영화'로 받아들여졌을까.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틀째였던 1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신촌에서 '옥랑 다큐멘터리, 한국 여성주의 다큐의 역사를 쓰다' 스페셜 토크가 열렸다. 여성영화제 조혜영 프로그래머가 사회를 본 이 행사에는 경순, 김일란, 김보람 감독이 참석했다.

    스페셜 토크에 앞서 김일란 감독의 '3xFTM과 경순 감독의 '쇼킹 패밀리'가 상영됐다. '3xFTM'은 지정 성별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한 세 사람의 이야기이고, '쇼킹 패밀리'는 가족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고민한 20, 30, 40대 여성의 기록이다. 김보람 감독은 올해 1월 개봉한 생리와 여성 몸에 관한 엔터테이닝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로 데뷔한 바 있다.

    세 감독의 영화는 모두 옥랑문화재단이 2002년부터 시작한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프로그램 '옥랑문화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여성의 삶을 드러내고 변화, 확장시키는 새로운 영화 연어를 개발, 실험, 창조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작품성과 시의성 면에서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았지만 관객수는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조 프로그래머는 "가장 고민되는 지점은 '왜 안 될까?'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붐이고, '피의 연대기'가 잘 되긴 했지만 더 잘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관객, 대중과의 접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제가 만나고 싶은 관객들이 권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용산참사 당시 공동정범으로 처벌받은 피해자 5인의 이야기 '공동정범'(이혁상 감독과 공동연출, 1월 25일 개봉)에 '상상치도 못했던 관객' 1만 2천 명이 들었다고 운을 뗐다.

    김 감독은 "'피의 연대기'를 좋아하는 관객과 ('공동정범' 관객) 교집합이 큰 걸 보며 내가 만나고 싶었던 젊은 여성 관객, 페미니스트, 이 사회에 다른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던 관객이 더 권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이 더 많았다면 더 흥행하지 않았을까"라고 밝혔다.

    이어, "'공동정범' 개봉하면서 알게 된 건 여성 관객이 현재 독립 다큐와 독립영화를 지탱해주고 계신 게 확실하다는 거였다. 이건 정말 분명한 것 같다. 젊은 여성 관객이 더 돈을 많이 벌고, 영화 볼 시간도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지난 2006년 개봉한 경순 감독의 '쇼킹 패밀리', 2009년 개봉한 김일란 감독의 '3xFTM', 올해 개봉한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 (사진=각 배급사 제공)

     

    김보람 감독은 "일단 초반에 극장 섭외가 정말 힘들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지역에 계시는 관객이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 지역에서 독립영화가 상영되는 게 너무 어렵고, 영화관이 있더라도 가는 일이 고생스러운 일이어서 (서울-지역 간) 불균형이 심하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김보람 감독은 "주류 매체나 미디어가 큰 영화는 조명하면서 중요한 이슈를 개발하고 소개하는 데에는 뒤로 물러서 있고 게으르지 않나 생각이 든다"며 "독립영화가 중요한 이슈를 좋은 퀄리티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개될 수 있는 건 굉장히 제한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김일란 감독은 '공동정범'이 개봉 전후로 다수 매체에 보도됐던 사례를 언급하며 "언론 노출이 된다고 해서 관객수가 어느 정도 나오고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동안 독립 다큐가 만나려고 했던 관객은 실제로 어떤 관객이었을까에 대한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순 감독은 독립 다큐가 개봉관 상영이 가능해지면서 오히려 영화가 다양한 경로로 관객을 만나는 기회가 줄어든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년에 개봉하는 영화가 몇 편 안 된다. (영화관에) 틀어지는 영화만 기자들이 취재해서, 영화제에 나오는 다양하고 의미 있는 영화 기사가 안 나오기 시작했다. '쇼킹 패밀리'만 해도 당시 민주노동당에서 전국 상영하겠단 이야기가 나왔었는데"라고 회상했다.

    경순 감독은 "여성영화제와 여성계 쪽에서 이슈를 만들어내는 전략이 필요한 것 같다"며 "여성영화제는 전주나 부산영화제와는 다르다고 저는 생각한다. 그러면 여성영화제에서 한국 사회의 여성 문제를 발굴해 가는 옥랑상이 더더욱 특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돈을 내는 건 아니어도 배급까지 지원하며 강력한 서포터즈가 될 수 있는 방식은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김보람 감독은 "(국내는) 시장이 없다. 돈 내고 다큐 본다는 것에 익숙한 관객이 없다. 넷플릭스에서 다큐에 몇억을 지원한다는 건 (그만큼의) 시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오스카 후보작에도 다큐가 들어가 있지 않나. 한국은 아무리 좋은 영화여도 다큐가 영화상에 들어있지 않다. 다큐를 영화 주류산업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본 1년 내내 다큐만 상영하는 극장에 사람들이 다큐 관람을 위해 줄 서 있던 일화를 전하며 "좋은 다큐를 보는 것만으로 (시야가) 트이는 걸 느꼈는데, 결국 자라나는 세대에서 (돈을 내고 다큐를 보는 게) 습관이 되고 문화가 되지 않으면 시장성을 갖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이어, "공동체 상영하면서 정말 작은 극장 운영하시는 분들을 봤는데 어떤 날은 1명이 오더라. 15명 온 날은 많이 든 날이라더라. 다큐 시장에선 작은 파이도 갖고 가기가 힘들다. 초기인 만큼 공적인 영역에서 지원해 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날 스페셜 토크에서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가 관객에게 온전히 '영화'로 받아들여졌는지에 관한 고민이 나왔다. (사진=김수정 기자)

     

    김일란 감독은 "10년 동안 만들어왔던 모든 것을 다 부정하는 형태의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다큐는 정말 영화로서 (관객을) 만나 왔나. 그게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정범' 언론 시사회 때 100명 넘는 취재진이 와서 배급사조차 깜짝 놀랐던 일을 전하며 "이 영화가 소비됐던 방식이 '이슈'였다는 거다, 영화가 아니라. 영화로서가 아니라 용산참사로서 바라봤다. 기자들이 주로 질문한 것도 용산참사였지 영화가 아니었다. (취재진이 보기에 '공동정범'은) 그 시기에 필요했던 쟁점을 다룬 영화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일란 감독은 "영화로서 관객을 만나길 바랐던 제 바람과 상관없이 그 당시 필요했던 쟁점으로서 관객들을 만나왔다는 것이다. '공동정범'을 영화로 만나고 싶었던 관객이 만 명 수준이었다고 느낀다. 연분홍치마(김 감독이 속한 창작 집단)는 영화로서 관객을 만나려고 무지 노력했는데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관객이 기대하는 다큐라는 긴장과 충돌 사이에서 헤매왔던 시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이런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치곤 재밌다', '다큐가 극영화처럼 재밌다'라는 댓글을 보고 우습게 넘어갔던 적이 있었다. 다큐가 극장에서 만나는 매체와 대중문화로서의 여력이 안 됐고, 제도도 충분치 않았다. 다큐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영화로서 관객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이 든다"고 전했다.

    한편, 올해로 스무 돌을 맞은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오는 7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진행되며, 7일 오후 7시 폐막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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